‘또 터질라’ 전기차 불안… 주민 간 갈등 확산 [미드나잇 이슈]

전기차 지하 출입 금지, 충전시설 지상으로
차주 “보조금 주며 장려해 놓고 억울” 부글
#. 경기 부천의 600여가구 규모 한 아파트는 최근 ‘인천 전기차 화재’ 사태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은 과거 지상에 차량 없는 단지로 설계돼 주차장이 지하 1∼2층에 갖춰졌고, 지상에는 아예 공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입주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잇따라 글이 올라오며 서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A씨는 “대책이 필요하다. 안전과 편의성 중 어느 것이 우선인지 따져봐야 한다. 만일 일이 터지면 그때는 감당할 수 없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B씨는 “현재 정답이 있을까요. 충전기 설치 안하면 과태료 발생하고, 그렇다고 지상에 두는 것도 쉽지 않다. 잘 알아보고 이의를 제기하기 바란다”고 막연한 하소연을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충전기 추가 설치를 놓고 ‘필요하다’, ‘절대 불가’란 이분법적 사고로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 전기자동차는 지상 주차장에 주차하라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난 벤츠 EQE 세단 화재로 14개동 1581가구 대단지 아파트가 쑥대밭이 됐다. 한 대의 전기차가 빚은 사고로 인적·물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애초 차량 140여대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지만 전소 42대, 부분소 45대, 그을음 피해 793대 등 모두 880대까지 늘어났다.

 

전기차 공포감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와 지자체가 부랴부랴 안전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올리거나 전기차 지하 출입을 막는 등등.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나온다. 대부분이 운전자들의 불편과 직결되고, 근본적인 방지책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의 갈등만 커지는 모양새다.

 

부천 상동의 또 다른 아파트는 최근 입주자대표 회의를 열고 이번 사안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그 결과 전기차를 당장 지상공간으로 옮겨 세우도록 소유주에 권고하고, 지하의 충전시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2026년 8월 전면 철거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이 각 단지 게시판과 커뮤니티에 공지되자, 불만을 토로하는 해당 차주들의 민원이 관리실 등에 한동안 빗발쳤다.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이 지난 1일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다. 뉴스1

남양주의 한 아파트에서는 이달부터 화재 위험성 등을 이유로 지하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시설 이용을 차단했다. 그러자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안양의 한 아파트에는 전기차의 지하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화재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다며 입주자들이 관련 투표를 벌여 10명 중 6명 이상(약 62%)이 이 같은 조치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하에 공용배관, 수도시설 등이 모두 있어서 불이 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다는 게 관리사무소 측 설명이다.

 

얼마 전 충북 충주에서는 곧 지하의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을 해제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기존 모두 21곳에 마련돼 있는 데 대표회의 검토와, 입주자들 민원으로 이렇게 결정됐다. 대신 지상에 전용주차장 30면을 새로 만든다. 갈수록 주민 갈등이 불거지자 사고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면 지하에 전기차를 댈 수 있게 한 곳도 나왔다.

11일 서울 시내 한 쇼핑몰에 설치된 전기자동차 충전소 모습. 뉴시스

17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화재 72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발생 장소는 주차장(27건)이었다. 관련된 불은 2018년 2건, 2020년 6건, 2022년 14건 등 해마다 증가 추세다. 전기차 차주들은 정부가 보조금까지 보태며 이용을 장려했는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신축 아파트들이 지상 주차장을 없애는 등 충돌 소지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근본적 해소 대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