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검찰총장의 뒷모습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송광수 검찰총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던 2005년 봄 검찰에선 “송 총장 임기 말에 레임덕은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레임덕(lame duck)이란 통상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면서 나타나는 권력 누수 현상을 뜻한다. 검찰총장이라고 다를까. 어느 조직이든 내일 모레 그만둘 수장의 지시나 명령이 신속하게 이행되길 바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송 총장은 무슨 대단한 능력을 지녔기에 레임덕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검찰 관계자들은 “워낙 훌륭한 분이어서 검찰총장을 마친 뒤 다른 중책을 맡을 것이 확실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매서운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송 총장이 검찰을 떠난 뒤 더 높은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의미였다.

이원석 검찰총장. 뉴스1

결과적으로 송 전 총장의 공무원 생활은 검찰총장 임기 만료와 함께 끝났다. 대한민국 검찰에는 제29대 박순용 총장(1999∼2001년 재임) 이래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총장은 퇴임 후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더는 공직을 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검찰총장을 지낸 뒤 법무부 장관으로 옮겨가기 일쑤였다. 제26대 김도언 총장(1993∼1995년 재임) 같은 이는 물러난 이듬해인 1996년 여당 공천으로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박 총장이 검찰을 떠난 뒤 법무장관 등 다른 공직에 기용되지 않고 또 선거와도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관행이 정립됐다. 송 전 총장 역시 퇴직 후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 대기업 사외이사, 공익재단 이사 등은 지냈어도 공직 근처에는 얼씬도 안 했다.

 

그런데 이 관행이 2022년 깨졌다. 현 대통령인 제43대 윤석열 검찰총장(2019년 7월∼2021년 3월)이 주인공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그리고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과 연일 갈등을 빚다가 임기 도중 그만둔 그는 사퇴 후 약 4개월 만에 야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과거 여야 합의로 검찰청법을 고쳐 ‘검찰총장은 퇴임 후 2년간은 공직에 취임하거나 당적을 보유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와 공무 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공직 취임’이란 법무장관 임명을, ‘당적 보유’는 총선 출마를 각각 의식한 문구로 풀이된다. 해당 법률을 만든 이들도 설마 전직 검찰총장이 대권에 도전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45대 이원석 현 검찰총장이 오는 9월15일 2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그는 여야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총장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이 명품 가방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검찰청사 밖에서 조사한 것을 두고 이 총장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자 국민의힘 일각에선 “검찰 조직보다 자기 이미지만 내세운다”, “총장이 정치를 한다” 등 날선 반응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술 더 떠 “이 총장의 자업자득”이라며 “허수아비 총장이란 점이 증명됐다”고 조롱했다. 그에 대해 “2년 내내 조용하다가 임기가 끝나가니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쓴소리를 하는 이도 있다. 이 총장은 심경은 어떨까. 어이가 없기도 할 테고 또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마침 그의 대학 시절 전공은 법학이 아니고 정치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