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이 빚은 위대한 걸작 몽생미셸을 가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광활한 갯벌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섬 수도원/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에 감탄 쏟아져/몽생미셸은 ‘성 미카엘 대천사의 산’/중세 풍경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엔 고풍스런 상점·카페/로마네스크·고딕양식 섞인 예배당 독특/대혁명이후 거대 감옥으로 변한 역사 흔적도 그대로  

 

몽생미셸 전경.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회색 갯벌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바위섬과 견고한 성벽. 정상을 향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중세시대 마을 건물들. 그리고 맨 꼭대기를 장식한 장엄한 1300년 역사 수도원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첨탑 위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 미카엘 대천사까지. 자연과 인간이 손을 맞잡고 빚은 위대한 작품, 몽생미셸 앞에 섰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이로운 풍경에 동공은 무한대로 커지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시간이 멈춘 중세 골목을 걷다

 

2024 올림픽 열전을 마무리한 파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로 꼽힌다. 센강을 따라 노트르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 루브르 박물관, 퐁네프다리, 에펠탑 등 아름다운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리 인근에 유명한 여행지들이 널렸다. 모네의 정원 실사 버전을 만나는 지베르니, 잔다르크 처형의 슬픈 역사가 깃든 루앙, 노르망디 최고의 걸작 에트르타, 베르사유 궁전 등이 대표적이다. 조금 더 외곽으로 나가면 프랑스 여행자들이 1순위로 꼽는 곳이 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인 환상의 바위섬 수도원, 몽생미셸이다.

 

몽생미셸 전경.
몽생미셸 전경.
몽생미셸.

파리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4시간을 달리면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의 경계 해안에 있는 몽생미셸의 주차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30분 정도 걷거나 10분 정도 걸리는 무료 셔틀버스로만 몽생미셸을 연결하는 파세렐 다리까지 갈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탄성을 터뜨린다. 한국에서 수없이 영상을 돌려봤지만 드넓은 갯벌에 펼쳐진 몽생미셸은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프랑스 낭만파 시인 빅토르 위고가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바다에는 몽생미셸이 있다”고 예찬한 이유를 잘 알겠다. 갯벌을 가로지르는 파세렐 다리가 뷰포인트. 신비한 몽생미셸과 드넓은 갯벌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모두 담을 수 있다.

 

몽생미셸 골목길 간판.

 

 

몽생미셸 골목길 간판.
몽생미셸 골목길.

다리를 건너 성벽 사이 ‘왕의 문’을 통과하면 메인로드 그랑 뤼를 시작으로 몽생미셸 여행이 시작된다. 놀랍다. 시간이 멈춘 듯 어른 3∼4명이 서면 꽉 차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중세시대 풍경이 가득하다. 예쁜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점이 서로 마주 보고 줄지어 서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건물마다 다양한 그림을 담은 간판이 눈에 띈다. 글을 잘 모르던 아주 오래전, 간판의 그림으로 용도를 알려주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몽생미셸에서 가장 유명한 오믈렛 가게 라메르풀라르에는 줄이 길다. 상점 이름은 ‘어머니 풀라르’라는 뜻으로 순례자들에게 오믈렛을 판매하던 곳이다. 포만감을 주기 위해 최대한 달걀을 부풀려 요리했는데 이곳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됐다. 오후 3시쯤 되면 식재료가 떨어지기에 몽생미셸에 오르기 전 맛보도록.

 

외부 계단 그랑드그레.
공중통로 아래에서 올려다 본 풍경.
남측현관 소골티에.
파세렐 다리와 갯벌 풍경.

◆1300년 역사를 만나다

 

골목길을 끝까지 오르면 웅장한 외부 계단 그랑드그레가 등장하고 계단 위 돌출된 두 개의 탑 아성의 통로를 지나면 드디어 수도원 내부로 들어선다. 가장 먼저 만나는 수도꼭지는 예배당 지붕의 빗물을 모아두던 오몬느리 우수조. 바위섬이라 식수가 귀하던 시절, 빗물을 모아 마실 물로 사용하던 척박한 삶의 흔적을 전한다. 예배당과 수도원장 관저를 잇는 공중 통로 아래 내부 계단을 지나면 예배당 남측 현관 앞의 작은 테라스 소골티에가 나타난다. 어느새 이렇게 높이 올라왔을까. 조금 전 지나온 파세렐 다리와 갯벌의 아름다운 풍경이 낭떠러지처럼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아찔하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면 수도원 예배당 입구인 신랑과 첨탑 위 성 미카엘 대천사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한다.

 

서쪽 테라스와 예배당.
성 미카엘 대천사.

아직 놀라긴 이르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확 트이며 몽생미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서쪽 테라스가 여행자를 반긴다. 이곳에서 성 미카엘 대천사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어마어마하다. 동쪽 노르망디의 샹포에서 서쪽 브르타뉴의 그루앵까지 광활한 갯벌을 품은 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 2.3㎞ 떨어진 모래톱 가운데 통블렌섬이 아담하게 솟아 있고 마침 날이 아주 맑아 40㎞ 거리의 쇼세 제도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쪽 테라스.
서쪽테라스.

몽생미셸의 갯벌은 약 4만㏊로 유럽에서 가장 넓다. 1년에 약 40일 정도만 만조를 이루는데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클 때는 무려 15m에 달한다. 특히 밀물 때는 분당 평균 62m의 속도로 밀려들어 위고가 “마치 말이 달리는 것 같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오래전 수도사와 순례자 등이 갯벌을 건너다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했다. 썰물 때는 20㎞까지 멀리 물이 빠져나가며 이곳 사람들이 ‘탕그’라고 부르는 짙은 회색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히 보면 서쪽 테라스 바닥 돌에 다양한 기호와 숫자가 적혀 있다. 수도원 건립에 사용된 화강암을 쇼세 제도에서 가져왔는데 석공들이 비용을 쉽게 계산하려고 자신이 공급한 돌에 구분 표시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배당.
예배당.
성 마카엘 대천사 계시 작품.

◆성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

 

이런 위험한 갯벌의 단단한 화강암 바위섬에 어떻게 수도원을 짓게 됐을까. 몽생미셸 둘레는 약 900m, 가장 높은 곳은 약 80m에 달한다. 바위섬의 원래 이름은 ‘몽통브’로 무덤을 뜻하는 라틴어 ‘툼바’에서 비롯됐다.

 

708년 어느 날 밤 바위섬에서 동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아브랑슈 마을 오베르 주교의 꿈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큰 바위 위에 자신을 기리는 성당을 지으라고 명한다. 하지만 오베르 주교는 척박하고 위험한 곳에 성당을 지으라는 지시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결국 성 미카엘은 세 번이나 꿈에 나타났고 급기야 손가락으로 오베르 주교의 머리에 구멍을 냈다.

 

용을 무찌르는 성 미카엘 대천사 작품.
방패와 검 작품.

그제야 계시를 받아들인 주교는 492년 성 미카엘이 강림했다는 동굴 안에 지은 이탈리아 남부의 몽가르강 성전을 본떠서 작은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다.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은 ‘성 미카엘 대천사의 산’이란 뜻이다. 12차례 화재 등으로 무너졌다 다시 짓기를 반복하면서 700여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 수도사들은 백년전쟁 때는 영국군을 상대했고 종교전쟁 때는 개혁파들로부터 몽생미셸을 지켜야 했는데 바다와 견고한 성벽 덕분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다.

 

목걸이 작품.
왕관 작품.

예배당에 들어서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신랑과 고딕 양식의 내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풍경을 만난다. 예배당에는 성 미카엘이 괴물을 물리치는 조각상, 20세기 초 파리의 보석상 멜레리오에서 만든 성 미카엘의 왕관 등이 전시돼 있다. 원본은 1906년에 도난당해 금 도금된 구리, 유리, 에나멜로 똑같이 복원했다. 성소를 장식하는 실크, 자수, 금실, 그림이 그려진 깃발과 성지순례용 금지팡이 등도 만난다.

 

공중정원 클로이스터.
공중정원 클로이스터.

예배당을 나서 수도사들의 기숙사를 지나면 몽생미셸의 공중정원 클로이스터를 만난다. 수도사들이 정원 둘레 회랑을 거닐며 명상과 사색을 하던 곳이다. 한 걸음 거리마다 지그재그로 기둥을 세웠는데 137개다. 의미가 있다. 1은 유일신, 3은 삼위일체이고 3과 지상의 세계를 뜻하는 4를 더하면 7이 된다. 회랑 천장 스팬드럴에는 다양한 조각이 새겨졌다. 그중 포도덩굴은 천국을 상징하며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용 등도 담았다.

 

 

 

대식당.

회랑과 연결된 공간은 수도사들의 대식당. 밝은 분위기에서 식사하도록 많은 채광창을 만든 점이 돋보인다. 수도사들이 돌아가면서 식사시간에 기도문을 읽었고 다른 수도사들은 일절 대화하지 않고 식사했단다. 수도원은 3층 구조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도록 동선을 만들었다. 대식당 아래 공간은 순례자의 방. 대형 벽난로가 설치된 것을 보니 수도원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벽에 길쭉하게 움푹 팬 굴뚝 흔적은 왕족들이 사용하던 공간이다.

 

물자 운반 대형 도르래.
물자 운반 대형 도르래.

수도사들의 묘지로 쓰이던 유골안치소로 들어서면 물자 운반용 대형 도르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몽생미셸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쫓겨나고 1793∼1863년 수도원 전체가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는데 무려 1만4000여명이나 수용됐다. 도르래는 아래에서 생필품을 끌어올리던 도구다. 죄인들이 물레방아처럼 생긴 대형 바퀴 안에 직접 들어가 발을 구르며 도르래를 작동시켰는데 한 번에 2t까지 운반했다. 아름다운 몽생미셸에는 이런 끔찍한 역사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예수 머리가 떨어져 나간 피에타.
북측 타워.

옆방은 수도사들의 장례예배를 올리던 생테티엔 소예배당.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유명한 피에타 조각상의 15세기 작품이 보관돼 있는데 예수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없다. 혁명군이 파괴한 것으로 역사를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복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몽생미셸은 볼거리가 많아 두 시간도 부족하다. 수도원을 나서자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다. 13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 뒤로 갯벌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노을은 잊지 못할 장엄한 감동으로 가슴 깊게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