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한 트로트 가수 김호중은 반대편 도로의 택시와 충돌한 뒤 달아났다가 매니저를 대신 자수시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음주 뺑소니’를 저질러 놓고도 갖은 거짓말과 조직적 은폐로 의혹을 부인하다 폐쇄회로(CC)TV 영상 등에 음주 정황이 드러나자 뒤늦게 음주 사실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극성 팬들은 막무가내로 김씨를 옹호했다. 비뚤어진 스타 의식은 물론이고 극렬 팬덤 문화까지 사회적 공분을 키웠다.
이 사건으로 법의 사각지대도 드러났다. 김씨가 사건 발생 10여일이 지나 경찰에 출석하는 바람에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특정하지 못해 음주운전 혐의는 빠진 채 기소됐다. 자연히 김씨의 음주 뺑소니 수법을 따라 하는 모방범죄가 잇따랐다. 심지어 대통령실 소속 선임행정관이 음주 후 경찰관 측정 요구를 거부한 사실이 공개될 정도였다.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는 의도적으로 또 술을 마시는 등 사법방해가 늘면서 공권력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사고 피해자들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국회가 음주 측정거부와 ‘술 타기’(음주 후 또 술 마시기) 등을 막기 위해 ‘김호중 방지법’으로 이름 붙인 도로교통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한 배경이다. 법률안에 사건 가해자·피해자 등 특정 인물 이름을 따 ‘○○○법’ 같은 별칭을 붙이는 것은 정치권에서 흔히 있는 관례다. 그런데 김씨의 극성 팬들이 이번에도 “(법안에 가수의 이름을 붙인 것은)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에게 “낙선 운동을 하겠다”, “당신들은 악마 같다”는 등 1만건이 넘는 전화·문자 폭탄을 날리고 있다고 한다.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나 도가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식 밖 행동이 국민 호응을 얻을 리 있겠나.
‘팬덤 정치’의 폐해가 어느새 우리 사회 전반에 침투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동안 정치인이나 그 지지세력이 팬덤과 분노 정치를 활용하는 행위가 심해질수록 누구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봐왔다. 김씨 팬덤의 국회의원 공격과 입법 방해 행위에 대해 정치권도 무겁게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어제 열린 2차 공판에서 김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김씨와 그 동조세력, 국회의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팬덤에게도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