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위협받는 병원 노동자들 “피해 전가 말라” [심층기획-의·정갈등 6개월 후폭풍]

재정난 병원들 무급 휴직·채용 중단
보건의료노조 임금 협상·파업 투표

전공의 집단 이탈로 재정이 악화한 수련병원들은 직원들에게 무급 휴직을 권고하고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며 “직원들에게 피해를 전가하지 말라”고 의·정 갈등 상황을 비판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올해 대학병원의 간호사 채용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올해 상반기 신규 간호사를 채용한 수도권 대학병원은 중앙대병원 1곳뿐이다. 기존에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2곳 중 18곳이 7월에, 4곳은 10월에 최종면접을 할 예정이었는데 전공의 이탈 이후 병상을 감소하면서 차질이 생겼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지어 지난해 채용한 간호사 발령도 밀려 있는 상황이다. 대학병원은 통상 간호대 학생을 졸업 전 연도에 사전 채용한 뒤, 이듬해 2월 이들이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발령을 낸다. 하지만 올해는 발령을 내지 않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간협)에 따르면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의 간호사 수가 3월 말 7만2994명에서 6월 말 7만2800명으로 줄었다. 졸업을 앞둔 간호사들은 직장을 갖지 못할까 우려하고, 이미 선발된 간호사들조차 채용이 취소될까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들은 무급 휴직을 강요받고 있다. 간협 관계자는 “2월20일 전공의 이탈 이후 병원들이 경영상의 이유라면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간 무급 휴직을 권하더니 이제는 몇 개월간 무급휴가를 쓰게 한다”며 “전공의 이탈로 인한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대학병원은 병원에서 일하는 전 직군에 무급휴가를 권하거나 근무 단축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은 간접 고용한 청소노동자의 근로시간을 하루 30분씩 단축한다고 공지해 “최저임금 노동자의 생활고를 가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병원 노동자들은 “의료 공백 사태를 메우고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로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며 임금 협상에 들어갔다.

보건의료노조. 연합뉴스

간호사와 의료기사가 속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총액 대비 6.4%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노사가 합의하지 못하면 29일부터 동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보건의료노조는 23일까지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병원 31곳과 고려대병원 등 민간병원 31곳, 총 62개 지부별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전공의 집단이탈로 병원 경영 사정이 악화해 요구가 관철되긴 쉽지 않지만, 노조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는 입장이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들의 파업으로 수련병원 중 비상경영체계를 선포한 병원이 75%에 달한다. 이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 의사들의 무책임한 사직으로 빚어진 일로, 2024년 현장 교섭은 파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급휴가, 연차휴가 강제, 임금 체불, 그리고 쏟아지는 업무를 견디면서 의료공백을 메워왔더니 이제 와서 또 우리에게 희생하라고 한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