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사 현장에 ‘피 묻힌 안전모’ 놔둬…과실 조작한 관리소장 실형

소속 근로자가 추락사한 현장에 피 묻은 안전모를 몰래 가져다 두는 등 과실을 은폐·조작한 아파트 관리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형사12단독(홍수진 판사)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아파트 관리업체 소속 관리소장 A(51)씨에게 징역 10개월을 20일 선고했다.

 

범행 현장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 B(55)씨에겐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1년,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클립아트코리아

 

A 씨 등은 지난해 7월 4일 경기 양주시 한 아파트 지하에서 배관 점검 작업을 하던 근로자 C 씨가 작업 중 추락해 숨지자, 그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던 사실을 은폐하고자 사고 현장을 조작한 혐의를 받는다.

 

B 씨는 사고 직후 A 씨에게 '안전모에 C씨 혈흔을 묻혀 추락사고 현장에 갖다 두라'고 지시했고, A 씨는 이를 이행함으로써 산업재해 은폐를 시도한 것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9일 열린 공판에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B 씨에게 징역 6개월을 각각 구형한 바 있다.

 

재판 과정에서 A 씨는 공소 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B 씨는 "범행 직후 (A 씨가) 현장에 안전모를 가져다 두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마치 모든 범행을 공모했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A 씨에 대해 "사망사고 발생 후 안전모를 현장에 두는 등 현장을 적극적으로 훼손했고, 이후에도 관리사무소 다른 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했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유족에게 4000만원을 지급한 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B 씨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으나, A 씨에게 안전모를 가져다 놓으라고 지시한 행동은 사고 발생 당시 피해자가 안전모를 쓰고 올라간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지시한 것으로 보기에 자연스럽다"며 "증거에 의하면 모두 유죄로 인정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B 씨는 이 사건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안전모를 갖다 놓으라고 지시하는 방법으로 현장을 훼손하도록 한 것은 죄질이 나쁘다"고 덧붙였다.

 

앞서 2022년 7월 4일 경기 양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에서 사다리를 이용해 배관 점검을 하던 아파트 관리업체 직원 C 씨가 사다리가 부러지며 추락해 숨졌다.

 

사고 당시 C 씨는 안전모와 안전대 등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는데 수사 결과 A씨와 B 씨가 과실을 감추려고 공모해 사고 직후 안전모에 피를 묻혀 현장에 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C 씨가 머리를 크게 다쳐 피를 많이 흘렸는데 발견된 안전모에는 외부에만 피가 묻어 있는 점을 수상하게 여긴 검찰이 추궁하며 안전모 현장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또 C 씨는 이보다 앞선 2020년 10월에도 사다리를 이용해 전등 교체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6일간 입원한 적이 있었다. A 씨와 B 씨는 이때도 C 씨 출근부를 허위로 작성, 정상 출근한 것으로 조작하고 산재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A 씨 등은 아파트 관리비 절감을 위해 배관작업 전문업체가 아닌 직원들에게 작업을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