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사업 시너지 극대화,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사업구조를 3대 부문으로 재편하기로 하면서다.
두산은 그룹의 핵심 사업을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 및 첨단소재’ 3대 부문으로 정했다.
이 중에서 ‘스마트 머신’ 부문이 문제가 됐다. 소형 건설기계 시장, 협동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사업적으로 결합하기로 한 것. 현재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밥캣이 인적분할, 로보틱스와의 합병 및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쳐 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두산서 황금알을 낳아 주는 ‘백조’ 대접을 받는 밥캣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두산이 미국 중장비업체 잉거솔랜드가 갖고 있던 소형 건설 중장비 브랜드 밥캣을 인수한 건 2007년이다. 인수비용과 이자비용 등으로 투입한 4조5000억원은 당시 한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액 중 최고였다.
두산의 ‘승부수’로 평가된 건 잠깐, 바로 밥캣은 ‘미운 오리 새끼’ 신세가 됐다. 인수 1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영업실적이 나빠졌고, 막대한 인수자금은 그룹의 재무 부담을 크게 키웠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은 2008년 밥캣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1조원을 수혈했다. 2009년에도 두산은 3개 계열사와 보유 중이던 다른 4개 회사 지분을 팔아야 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두산은 기어이 2010년 2분기 밥캣을 흑자로 돌렸다.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이 결정타였지만, 인프라코어 등 튼실한 자회사를 또 팔아야 했던 2021∼2022년의 두산 구조조정 씨앗이 밥캣 인수였다는 말도 있다.
이번 사업재편도 두산이 던진 승부수로 봐야 한다. 밥캣을 품은 로보틱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영역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업력을 보유한 두산은 중장기 비전에 맞춰 소비재 사업을 버리기도 했고, 중공업을 키우기도 하며 역사를 이어왔다. 두산의 과거 사업재편 결과도 지금까지는 썩 나쁘지 않았다. 로보틱스와 밥캣의 합병도 그런 흐름의 하나로 봐야 한다.
세계적 추세도 비슷하다. 노동력 부족과 인건비의 급속한 상승, 안전 규제 강화 등이 메가 트렌드가 되면서 인간 노동력 대체가 산업계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경쟁력 있는 무인화·자동화 기술 확보가 향후 시장 주도권 확보에 필수 요소로 부상해 로보틱스 회사들의 M&A가 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설장비 분야 글로벌 1위 업체인 캐터필러가 2020년 마블로봇을 인수했고, 농업 장비 세계 1위 업체인 디어앤컴퍼니는 페어 플래그 로보틱스를 2021년에 인수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로보틱스와 밥캣 합병은 주주가 결정할 일이다. “(구조 개편)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지속해서 정정 요구를 하겠다”는 식의 당국 압박은 주주 선택권 침해이고 시장 혼란을 키우는 잡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