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택시 월급제 시행 하루 전 접어, ‘무책임 입법’ 표본 아닌가

여야가 전국에 확대할 예정이던 택시 월급제를 시행일(20일)을 하루 앞둔 그제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택시 업계 노사 모두 제도 시행을 격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그제 소위에서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택시 월급제 확대 2년 유예안을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유예 기간이 끝난 2년 뒤에는 또 어떻게 할 건가. 정치권이 택시 업계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택시 월급제는 법인 택시기사에게 주 40시간 이상 근로를 의무화하는 대신 2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기존 사납금제 대안이다. 2019년 법이 개정돼 서울은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당시 택시 업계의 반대가 심했지만, 민주노총이 근로 여건 개선 등을 명분으로 압박에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주도했다. 면밀한 검토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법제화 과정에서 복잡한 택시기사 월급 체계와 고령화 문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미비 등 현실을 무시한 입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시 시범 운용 결과 금방 부작용이 드러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급 206만원을 주려면 택시 한 대당 월 50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보험료, 가스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법인택시 월평균 매출이 500만원을 넘은 지역은 서울(509만원)이 유일했다. 월급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인구가 적은 지역 택시 업계는 파산에 직면할 것이라는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주 40시간만 대충 때우는 기사가 생겨나고, 파트타임 근무를 원하는 기사들은 떠나갔다. 60세 이상 고령 기사가 전체 기사의 59%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 40시간 이상 근무는 비현실적이었다. 무책임 입법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문제점을 알았다면 미리 법을 고쳤어야 했는데도 정치권은 책임을 방기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우버나 타다 등 모빌리티 혁신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택시기사 보호를 명분으로 신규 서비스를 금지하는 규제를 만들었던 정치권 아닌가. ‘옥상옥(屋上屋)’, ‘역차별’이라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불만과 국민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회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입법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입법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 불편과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