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붓 연구소 석필원(石筆苑)공방은 땡볕에 옥수수가 익어가는 충북 증평군 도안면 한적한 농촌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충북 무형유산 제29호 필장(筆匠) 기능보유자 유필무(64) 장인의 작업 공간이다. 유 장인은 자신만의 고집을 지키며 48년째 전통 붓을 제작하고 있다.
공방에 들어서니 붓 제작에 사용되는 작업 도구와 양털, 대나무 묶음 등이 있다. 다시 작은 문을 여니 전통 붓을 제작하는 작업실이 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전통 붓이 벽 양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업대에는 붓 제작에 필요한 공구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장인은 거의 모든 시간을 3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머무르며 전통 붓 제작에 정성을 쏟는다. 필장이란 붓(筆)을 만드는 공예기술을 가진 장인(匠人)을 뜻한다. 충북 충주 앙성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유 필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3세에 일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생계를 위해 식당, 가발공장 등에서 밤새워 일하며 지냈다.
“16세 때 친척 권유로 붓 공방에 들어갔어요. 붓에 대한 지식이니 관심 없이 갔는데 완성된 붓을 처음 보는 순간 붓을 만드는 일은 가치가 있고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더라고요.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유 필장은 자신의 붓을 차별화하기 위해 붓대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는다. 수작업으로만 제작되는 유 필장의 붓은 각기 모양과 문양이 달라 하나뿐인 유일한 붓으로 탄생된다.
“제가 만든 붓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판매하지 않아요. 고집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제가 지키고 싶은 붓에 대한 마음이에요.”
유 필장은 전수자 육성이 쉽지 않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어렵게 배워봐야 생활이 안 되니 문제”라는 것이다. 아들이 대를 이어 배우기를 바랐지만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 필장이 무더위에 온종일 이어진 붓 작업에 땀으로 흐트러진 긴 머리를 정갈하게 정리해 질끈 묶는다. 그러곤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어두침침한 공방으로 들어간다. 전통 붓을 지키려 하는 장인의 뒷모습에선 옛것을 고집하는 자부심과 전통의 맥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