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충전율이 90%여서 전기차를 배에 실을 수 없어요."
지난 20일 오전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선착장.
A씨는 자신의 전기차 택시를 배에 싣고 이작도로 가려 했지만, 선박 관계자는 해양수산부의 전기차 선적 제한 권고안을 설명하며 A씨 차량의 선박 진입을 막았다.
A씨는 "지금껏 아무 문제 없이 다녔는데 왜 갑자기 안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항의했지만, 방침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자 결국 여객선 운임을 환불받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부가 충전율이 높은 전기차의 선박 선적을 제한하는 권고안을 내놓았지만, 구속력이 없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는 혼선만 커지고 있다.
2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지난 8일 전기차를 배에 실을 때 충전율을 50%로 제한하는 권고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다 보니 전기차를 배에 실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여객선사마다 제각각 다르다.
인천의 경우 승객과 차량을 같이 운송하는 차도선의 11개 노선 중 전기차 선적을 일부 제한하고 있는 항로는 인천∼이작 등 5개 항로다.
이들 5개 항로 여객선 운항을 담당하는 B선사는 전기차 충전율을 일일이 확인한 뒤 해수부 권고대로 충전율 50% 이상 전기차의 선박 진입을 제지하고 있다.
B선사 관계자는 "완충된 전기차는 불이 났을 때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특히 전기 화물차는 일정 무게 초과 때 하부에 있는 배터리에 부담을 쉽게 줄 수 있어 선적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나머지 여객선사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선박 선적을 허용하고 있다.
인천∼덕적 항로 C선사는 전기차 충전율을 확인하고 있지만 충전율이 50% 이상이어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전기차를 별도 공간에 선적하고 초기 진화용 장비인 차량용 질식소화 덮개를 구매했다.
C선사 관계자는 "전기차는 평소에 1∼2대씩 들어오는데 선적할 때마다 걱정이 되긴 한다"면서도 "선사 마음대로 선적 여부를 결정하기 부담돼 일단 전기차 선적을 허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운항 간격 시간이 짧아서 전기차 충전율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선사도 있다.
인천 삼목∼장봉 항로 D선사 관계자는 "1시간마다 배가 운항하다 보니 매번 차량이 줄지어 있어서 해수부 권고안을 따르기 어렵다"며 "혹시 몰라 전기차를 마지막에 선적하고 있지만 차주 불만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인천 여객선에 실린 전기차 1천439대 중 삼목∼장봉 항로 이용 전기차는 1천90대로 전체의 75.7%를 차지했다.
해운업계에서는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려면 전기차 선적에 대한 정부 차원의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만에 하나 선박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다면 자체 진화가 사실상 어려워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지금보다는 더욱 현실적이고 세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인천해수청은 선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화재 위험성 교육과 함께 관련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인천해수청 관계자는 "선사에 정부 지침을 권고하면서도 안전감독관이 현장에서 선적 관리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해수부와 전기차 화재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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