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12년간 전시된 독도 조형물이 최근 철거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국가 수호와 영토 주권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전시물이 낡았다”는 이유로 돌연 사라진 것이다. 앞서 광복절 전후로 서울 지하철 역사 내의 독도 조형물이 철거된 것을 두고 비판이 제기됐는데, 이번엔 전쟁기념관에서 유사한 사례가 확인돼 추가적인 논란이 예상된다.
전쟁기념관 2층 6·25전쟁실 앞 복도에는 ‘아름다운 섬, 독도’라는 제목의 설명문과 함께 가로 80㎝, 세로 50㎝ 크기의 독도 조형물이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조형물은 예고 없이 사라졌고, 이날 현재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오는 디지털 사이니지(전광판)와 전시 안내 배너 스탠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념관 측은 노후화로 조형물을 철거했으며,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념관 관계자는 “개관 30주년을 맞아 노후화된 전시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2012년 제작된 독도 조형물을 철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노후화 등의 이유로 전쟁기념관에서 철거된 전시물이 총 6개인데, 그중 독도 조형물을 포함한 3개가 6월3일에 철거됐다”고 부연했다. 철거 당시 독도 조형물에 파손된 흔적 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독도 조형물을 재설치할 계획은 아직 없다. 이 관계자는 “전시 계획은 미정이며 계속 검토 중”이라며 “보수 작업을 거친 후 어떤 콘텐츠로 전시될지 논의가 필요한데, 아직 그런 단계까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전쟁기념관이라는 장소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번 철거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곳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 독립운동이나 6·25 전쟁 등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이미 설치된 조형물을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최 전 소장은 노후화를 이유로 든 전쟁기념관 측의 설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노후화해서 철거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깨끗하게 청소해서 다시 설치하면 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노후화됐다는 핑계로 독도 조형물을 철거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일부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전쟁기념관을 방문한다는 강성호(62)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특히 많이 오는 곳인데 독도를 잘 알릴 수 있는 조형물이 사라져 아쉽다”며 “철거 이유가 담긴 설명문을 붙였다면 오해의 소지가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서울교통공사가 시청역, 김포공항역, 이태원역 등의 독도 조형물을 철거해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당시 공사 측은 2009년 설치 이후 15년이 경과돼 조형물의 변색·변형, 보호 시설물 파손 등으로 인한 노후화를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철거 조치에 대해 시민들의 비판이 거셌다.
여론이 악화하자 서울교통공사는 입장을 선회해 독도 조형물을 재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시민 안전 확보 차원에서 독도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지만, 시민들의 높아진 역사의식에 부응하지 못해 혼란을 초래한 점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공사는 잠실역, 안국역 등에서 철거된 독도 조형물을 승객 등 유동인구 동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벽면 액자 형태로 만들어 10월25일 ‘독도의 날’에 맞춰 재설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