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업체 아리셀 화재는 ‘예고된 참사’였다. 수사·노동당국은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 인력 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 대표,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 등 4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적용,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23일 오전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이상 제품을 발견하고도 검수 없이 정상 제품 취급하는 등 공정상 부실이 다수 발견됐다”며 “이를 통해 분리막 손상 또는 전지 내·외부 단락이 발생해 폭발 및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 4월 규격미달 첫 판정…납기 맞추려 비숙련공 투입 ‘무리한 작업’
수사본부에 따르면 아리셀은 2021년 최초 군에 납품을 시작할 당시부터 줄곧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해 품질검사를 통과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2월까지 이처럼 군에 납품한 전지는 47억원 상당이었다.
하지만 줄곧 품질검사를 조작해오던 아리셀은 지난 4월분 납품을 위한 검사에서 처음으로 국방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당시 국방기술품질원이 무작위로 선정한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과정에서, 선정된 시료에 적힌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규격 미달 판정으로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아리셀은 압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맺고 2월 말 8만3000여개를 납품한 데 이어 4월 말에도 8만3000여개의 전지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6월분(6만9000여개) 납기일까지 다가오자 아리셀은 5월 이후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해당 공장의 하루 평균 생산량의 2배 수준이다.
이때부터 미숙련공을 동원한 무리한 제조공정이 이어졌고, 화재 사고를 야기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수사당국은 아리셀이 리튬전지 불량률이 늘었음에도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공정을 강행했다고 판단했다. 공정 중 케이스가 찌그러지거나 핀홀(실구멍)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불량이 발생했음에도 결합이나 재용접을 거쳐 출고했다는 것이다.
아리셀은 지난 5월에는 미세단락으로 인한 전지 발열을 처음 인지하고 정상 전지와 분리했으나 6월부터는 별도 검증 없이 발열 전지 선별작업마저 중단했다고 수사당국은 밝혔다.
◆ 찌그러진 부분 망치로 치고, 구멍은 납땜…대피경로 확보도 부실
특히 참사 이틀 전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발연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생산라인은 계속 가동됐다. 참사 당시 2층에 적재됐던 전지들도 참사 이틀 전 폭발한 전지와 같은 시기에 전해액이 주입된 제품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번 조사에선 화재 당시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부실이 드러났다. 불이 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 중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달리기도 했다.
또 근로자의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돼야 할 사고 대처요령에 관한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6월24일 오전 10시30분쯤 화성시 서신면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불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123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구성해 4차례 합동감식을 벌이고 103명을 소환해 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