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도입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시행 여부가 아직 오리무중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그제 “금투세 폐지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결론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단 내년에 시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야 간에 합의하자”고도 했다. 국내 증시에서 ‘큰손들’의 자금이탈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대표의 말처럼 금투세 폐지 혹은 유예는 더는 미룰 수 없는 화급한 과제일 것이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모호하다. 이재명 대표는 수차례 금투세를 완화하거나 유예할 뜻을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달 “금융투자로 5년간 5억원 정도 버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는 달리 진성준 정책위 의장은 금투세 대상자는 전체 주식 투자자 1400만명의 1%인 15만명에 불과하다며 부자 감세를 이유로 반대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서민과 무관하다는 야당의 부자 감세론은 실상과 다르다. 상위 1%가 움직이는 자금이 150조원에 이르는데 이 중 일부만 해외로 빠져나가도 불똥이 ‘개미’로 튈 수밖에 없다. 어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금투세 폐지 또는 유예’ 응답이 57.4%로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 27.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20대와 30대는 65∼66%에 달했다. 한 대표는 “청년들의 자산증식이 과거와 달리 자본시장 투자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금투세 폐지는 청년 이슈”라고 했다. 적절한 지적이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연간 5000만원 이상의 돈을 번 투자자에게 소득세를 물린다. 이익에서 손실을 빼고 5000만원 초과분의 20%, 3억원 초과분은 25%가 적용된다. 2023년 도입하려다가 2022년 12월 여야 합의로 2년 유예됐다. 윤석열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후 정부·여당은 시행 전 폐지를 추진해왔다.
금투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부합한다지만 현재 외풍에 취약한 주식시장에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금투세 시행은 자본이탈을 촉발해 증시충격과 금융혼란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와 여당이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밸류 업’ 정책 기조와도 배치된다.
당장 금투세 대상자가 개인이고 기관과 외국인은 빠져 있다. 개인으로서는 없던 세금이 새로 생기니 증시이탈이 가속화될 게 뻔하다. 가뜩이나 ‘국장(국내 증시)보다 미장(미국증시)’, ‘국장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개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올 상반기 7조4000억 어치 주식을 더 팔았고 같은 기간 미국 증시에서 11조원가량 순매수했다. 채권시장에서도 개인의 순매수 규모가 4월 4조5000억원에서 이달 2조1000억원으로 반 토막 났는데 금투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금투세를 시행하더라도 0.15%의 증권거래세는 그대로 부과돼 이중과세문제가 불거진다. 연간 수익이 5000만원 이하라도 해당 수익이 소득으로 잡혀 엉뚱하게 연말정산 혜택이 줄고 건강보험료도 추가로 부과될 수 있다. 징수문제도 만만치 않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원천징수로 하게 되면 2000만 개인투자자들의 복리 투자 효과 상실에 따른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만도 1989년 주식 양도세를 시행했다가 한 달 만에 주가가 40% 가까이 폭락했고 결국 1년여 만에 철회했다. 결정이 미뤄질수록 시장 불확실성과 갈등은 증폭될 공산이 크다. 이제 더는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민주당은 증시 실상과 금투세의 부작용 등을 직시하고 합리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폐지가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유예라도 합의해 투자자의 시름을 덜어주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