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 원내 1당에 해당하는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 지도자들과 만난 뒤 “곧 새 총리를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NFP가 총리 후보자로 미는 루시 카스테트(37) 현 파리시 재정국장의 등용 가능성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마크롱이 여전히 중도 집권당 출신 인사의 총리 기용에 미련을 갖고 있고, 또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을 비롯한 우파 진영에서 “좌파 정부가 등장하면 불신임 투표를 추진할 것”이라며 벼르는 상황이라 카스테트의 총리 발탁을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NFP는 지난 7월 실시된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193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되었으나 총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에는 한참 모자란다. 하원은 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총리 등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총리는 물러나야 한다.
23일(현지시간) AFP, dpa 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은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주요 정당 지도자들과 만났다. 하원에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단일 정치 세력이 없는 가운데 차기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지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마크롱이 임명한 중도 집권당 소속 가브리엘 아탈 현 총리와 NFP에 의해 차기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카스테트도 참석했다.
회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참석자들은 마크롱이 “하원의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적인 정부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마크롱은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변화’를 주문했지만, 그것이 현 중도 집권당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 마크롱의 중도 집권당은 164석, 극우 성향 RN은 143석을 각각 확보해 NFP에 이어 2위, 3위를 차지했다.
마크롱은 가장 많은 의원을 배출한 NFP가 정부 구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권리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반 의석에 100석 가까이 부족한 만큼 중도 및 우파와의 연대가 불가피하며, 그러려면 총리 인선 등에 있어서 보다 더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들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중도가 선호하는 현 총리 아탈이 40%(복수응답 가능)로 1위를 차지한 반면 좌파 성향의 카스테트는 17%로 21위에 그쳤다.
하지만 NFP는 카스테트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NFP는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그리고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등 여러 블록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LFI가 가장 강경하다. LFI 관계자는 “마크롱과 어떠한 형태의 협상도 불필요하며 총리 후보자는 카스테트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마크롱을 비롯한 중도파와 우파는 NFP가 집권하더라도 LFI는 정부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우파 성향의 공화당 관계자는 “LFI 출신 장관이 포함된 내각이라면 불신임 투표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스테트는 “당장 오늘부터라도 다른 정치 단체와 대화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할 준비가 돼 있다”며 총리직 수행에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마크롱은 오는 26일에도 주요 정당 지도자들과 만나 연정 수립에 관한 대화를 이어갈 예정이다. 새 총리 지명은 이르면 다음 주중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