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1886년 설립한 웨스팅하우스는 한때 미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표 기업이었다. 100여개의 특허를 보유한 웨스팅하우스는 전기발전부터 가전, 방위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원자력발전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상업용 가압수형 원자로(PWR)를 1957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1978년 4월 가동을 시작한 한국의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전수로 시작됐다.
웨스팅하우스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주력 사업이 줄줄이 매각된 가운데 웨스팅하우스라는 회사 이름은 원전 자회사로 넘어갔다. 이 자회사는 주인이 영국의 핵연료 회사인 BNFL를 거쳐 일본 도시바로 바뀌었고, 지금은 캐나다 사모펀드와 우라늄 업체가 소유하고 있다.
한국과 웨스팅하우스는 좋은 인연으로 출발했지만 최근 관계는 꼬이고 있다. 2022년 10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출을 시도하는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해 웨스팅하우스 측이 문제 삼고 나섰다. 웨스팅하우스는 자기들의 원천기술이 한국형 원전에 포함돼 있다며, 미국 정부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지난해 9월 각하됐으나 웨스팅하우스 측은 항소했고, 현재 항소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한국은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쾌거를 일궈냈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의 수출 때 미국 에너지부에 수출 신고 권한을 갖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다시 지식재산권 문제를 거론하며 신고를 미루고 있다. 8월 초 우리 측 민관 대표단이 미국을 찾아 설득을 시도했지만 성과 없이 귀국했다고 한다. 이번 분쟁이 심화하면 한·미 양국이 모두 피해를 본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천기술을 보유했지만 30여년간 원전을 지은 적이 없어 시공·운영능력이 부족하다. 이 갈등은 70년간 신뢰를 쌓은 한·미동맹을 통해 양국 최고위급 경제 외교로 푸는 게 바람직하다. 본계약이 내년 3월로 예정돼 있는 만큼 서둘러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