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전면전이 일어난 뒤 인도 정상이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디 총리가 키이우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우크라이나 역사박물관이었다. 그곳에선 전쟁 발발 후 현재까지 러시아군의 공습 등으로 희생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참혹한 현장을 담은 사진 등 전시물을 살펴본 모디 총리는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스러져 간 아이들의 유족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대화와 외교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을 멈추고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 나서라는 권유인데, 벌써 2년6개월가량 이어진 전쟁에서 영토를 빼앗김은 물론 어린이를 포함해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잃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를 쉬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전쟁은 어른들이 시작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은 그런 평범한 일상에서 멀어진 지 이미 오래다. 포성이 들려오면 부모 손에 이끌려 낯선 곳으로 피난을 떠난다. 공습경보가 울리는 순간 가던 길 멈추고 지하철 역사 등에 마련된 방공호로 숨는다. 그래도 가족과 생이별을 겪은 뒤 러시아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2023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푸틴이 받는 전쟁범죄 혐의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ICC는 그중에서 영유아 강제 이주를 가장 심각한 범죄로 간주했다. ICC 관계자는 체포영장 발부 이유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어린이 최소 수백명이 납치돼 러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며 “이 어린이들 다수가 이후 러시아 가정에 입양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전쟁 중인 가자지구는 또 어떤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하마스 대원과 무관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희생이 늘어나는 가운데 어린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일에는 생후 4일 된 쌍둥이 아기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는 참변이 일어났다. 쌍둥이 아빠가 관공서에 출생 신고를 하려고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 아파트 위로 폭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아기들이 사라졌다. 나는 쌍둥이 탄생을 축하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며 오열하는 사내의 모습에 지구촌 전체가 숨죽여 울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인도적 휴전을 요구하고 있으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요지부동이다. 주변 이슬람 국가들 전체를 적으로 삼더라도 미국의 지원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나라가 없다는 것이 죄는 아닐 텐데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나라 없는 설움 속에 죄도 없이 죽어간다.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현충일 그림 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 6월6일 현충일을 맞아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가 그리는 나라 사랑,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주제의 그림 공모전에는 20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수상작을 보니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을 화폭에 담은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하나같이 순국선열과 6·25전쟁 참전용사 등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요즘처럼 누구나 쉽게 뉴스를 접하는 시대에 아이들이라고 우크라이나 또는 가자지구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곳 어린이들이 겪는 비극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저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무릇 나라에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 아이들을 비롯한 국민을 지키기 위해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는 점, 그 토대는 바로 국민들의 나라 사랑이라는 점을 깨닫는 그림 대회가 되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