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신검’ 결과 때문에 장애연금 거부…법원 “부당한 처분”

37년 전 징병검사를 근거로 장애연금 지급을 거부한 국민연금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단은 연금 가입 전 발생한 장애라고 봤지만, 법원은 이를 단정하기 어렵고 장애연금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를 한 시민이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A씨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장애연금 수급권 미해당 결정 처분취소 소송을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962년생인 A씨는 1999년부터 국민연금 가입자 자격을 유지하다 2022년 ‘양측 감각신경성 난청’을 이유로 장애연금을 청구했다. 공단은 그러나 A씨가 1985년 받은 병역판정 신체검사에서 이미 중등도(41∼55㏈)에 해당하는 난청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며 A씨 청구를 거절했다. 연금 가입 전 이미 난청이 있어 장애연금 수급권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A씨는 징병을 위한 신체검사 당시 청력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2010년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했고 운전면허 취득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난청의 초진일은 2010년이고, 국민연금 가입 전 질병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어 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법원도 “징병 신검 때 청력장애로 인한 4급 판정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는 국민연금에 가입한 1999년 4월 이전에 청각장애를 초래한 질병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씨가 제대 후 1989년 입사해 직장생활을 했고 2000년에는 사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는 등 보청기 착용 없이 일상을 영위하다가 2010년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 진료를 받게 된 사정을 감안했다.

 

2010년 병원 진료 이전에 난청이 있었음에도 A씨가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최초발병일이 신체검사가 이뤄진 1985년 이전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는 감정 결과도 나왔다.

 

재판부는 또 1985년 신체검사 결과를 그대로 신뢰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당시 청력 검사는 군의관의 ‘속삭임’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5m 거리에서 속사이는 소리를 ‘신속히’ 복창해야 하는데, 수검자가 알아듣지 못하면 한발씩 접근해 청취에 성공한 거리를 측정했다.

 

이외에 정밀한 청력 측정을 위한 별도의 검사가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가입 중 발생한 질병으로 장애가 남은 자에 한해 장애연금 수급권을 인정하는 취지는 부정한 목적으로 연금에 가입함으로써 기금의 안정유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연금 운영의 형평을 기하는 데 있다”며 “원고가 가입할 당시 장애연금을 받을 목적으로 이 사건 질병 발생 사실을 숨기고 가입했다가 장애연금을 청구하는 경우라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