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에 큰 ‘쓰나미’가 덮칠 것 같다.”
전공의 1만2000여명이 수련을 포기한 지 반년을 넘기면서 전국 병원의 응급실 위기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강원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26일 “다음달 추석 연휴 5일과 앞뒤 하루씩 일주일간 응급의료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통상 명절 연휴 전날과 직후에 1·2차 병원이 상태가 나쁜 환자들을 3차병원으로 전원한다”며 “전공의가 있을 때에도 명절 연휴엔 외래진료가 없어 경증환자까지 응급실로 오는데 지금은 응급의학과 전공의 500여명이 모두 그만둔 상태라 중증환자 대응도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명절에 장염 등 복통 환자가 많고, 제초 등을 하다 벌에 쏘이거나 다친 환자 등으로 응급실 환자는 평소의 두 배가 된다”며 “특히 배후진료과 의사들도 없어 응급실에서 간단한 봉합도 힘든 상황이라서 추석에 환자를 어찌 수용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셧다운’(운영 중단) 얘기까지 나오지만 실제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의료진도 평소보다 많은 환자를 돌보면서 패닉에 빠지는 ‘의료대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의 우려를 기우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실제 병원 셧다운은 이어지고 있다. 건국대 충주병원에선 응급실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전원이 극심한 심적 부담과 피로를 호소하며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됐고 최근 4명이 추가로 사표를 내 셧다운 위기다. 부산 상급종합병원인 동아대병원은 응급실 39병상 중 11병상만 운영하고 있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가 늘어야 해결될 문제라 마땅한 대책이 없다”면서도 “추석 연휴에 환자들은 원래 전공의가 없던 작은 병원을 찾아가는 게 그나마 치료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통상 추석 연휴엔 응급실 환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건으로, 하루 평균 약 2만3000건꼴인데 평소의 1.9배가량이다. 추석 연휴 사고의 경우 화상이 3배, 관통상이 2.4배, 교통사고가 1.5배까지 증가했다.
한 구급대원은 “추석 등 명절에는 평소보다 119를 찾는 환자들이 체감상 4∼6배는 많은데, 가뜩이나 전공의 이탈로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받아줄 응급실이 있을지 벌써 걱정된다”면서 “동네 의원들 상당수가 문을 닫을 것이고, 2차 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경증환자라는 이유로 거부할 건데 이렇게 되면 사실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차원에서 응급실 인력을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 ‘경기 지역 한 2차병원이 추석 연휴 5일간 응급실에서 근무할 의사에게 세후 1000만원을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이번 명절에는 특히나 경증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미 응급진료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고 지방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의료대란이 시작되려 한다”며 “정부는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대한민국 의료붕괴를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일부 응급실에서 단축 운영 등 온전히 운영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지만,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 408개 응급의료기관 중 24시간 진료가 일부 제한되는 곳이 세 군데”라며 일부는 9월1일부터 정상화되고 나머지도 조만간 인력 확충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29일로 예고된 보건의료노조 파업에 대해선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실제 파업에 들어가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조정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27일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당직 병원 확대 등 추석 응급의료 특별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공의 공백을 메울 진료지원(PA) 간호사 법제화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은 28일 본회의 통과가 예상됐지만, PA 간호사 업무 범위 등을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처리가 불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