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모친상을 알리는 부고 문자였는데, 나는 당혹스런 마음으로 문자를 여러 번 살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장례식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주들의 이름은 물론 고인의 영정사진까지 모두 확인했지만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잘못 보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찜찜했다. “이런 건 정확해야 하는데.” 중얼거리던 내 마음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자주 쓰던 말이었다. 그는 매사에 셈이 분명하고 행동이 재발랐다. 나는 그에게서 청첩장을 받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결혼식이 꼭 3주 남았던 때였고, 결혼식과 이사와 신혼여행 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그의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가봉해둔 드레스를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말하며 그가 청첩장을 내밀었다. “준비하는 동안 내 주변 사람들이 딱 반으로 나뉘더라고. 청첩장을 줄 사람과 안 줄 사람, 모바일 청첩장으로 끝낼 사람과 직접 만나 종이 청첩장을 건네줄 사람.”
경조사를 치르면 인간관계가 단번에 ‘정리’된다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결혼식이 끝나면 더 확실해지겠지.” 그는 자신의 분류에 상당히 자신 있어하는 눈치였다. 연한 크림색 청첩장의 돌출된 부분을 이리저리 만지다 내가 물었다. “그건 뭘로 구분하는데?” “당연히 시간과 돈이지.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결혼식에 참석했는가, 축의금은 얼마나 냈는가처럼 명료한 것. 우리 부모님은 오빠 결혼식 방명록을 아직도 들여다보셔. 누가 와서 얼마 냈는지 적어놓은 그거 말이야.” 나는 조금 질리는 기분이었다. 그가 말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그는 내가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거나 흡족하지 않은 액수의 축의금을 낸다면 나를 선 바깥으로 분류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그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갚아야 되니까 그러는 거야. 상대방 경조사에, 내 시간과 돈으로 받은 만큼 갚음해야 하니까.”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