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의 민족’ 되어가는 한국… 30대 “사회 불공정” 심각 [뉴스 투데이]

성인 2명 중 1명 ‘분노·좌절 만성화’

서울대 연구팀, 1024명 조사결과
30대, 높은 수준 울분 14% ‘최고’
50·40·20대·60세 이상 順 낮아져

“회사에서 부당하고 모욕적인 요구를 받아도 거절하기 힘들어요. 이제 적응했다고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욕감을 느낍니다. 30대가 과도기 같아요. 40대의 안정감은 없고, 20대처럼 시간이 많다고 느끼지도 못하죠.”

 

중소기업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김모(39)씨의 말이다. 그는 “남들과 연봉이나 사회적 대우가 바로 비교되다 보니 신경 쓰인다”며 “가진 것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는 현실을 체감하면서 불공정함을 많이 느낀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최근 공허한 기분이 들 때가 잦다. 박씨는 “열심히 노력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을 보면 과연 이 사회가 공정한지 의문이 든다”면서 “선배 세대보다 더 좋은 스펙을 갖추고도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 가격도 감당하기 힘든데,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사라진다”고 토로했다.



김씨와 박씨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27일 발표한 ‘2024 국내 일반인 울분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의 울분 수준이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울분은 부당하고 모욕적이며 개인의 신념에 어긋나는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울분 정도를 1.6점 미만(이상 없음), 1.6점 이상~2.5점 미만(중간 수준), 2.5점 이상(심각 수준)으로 구분했다.

한국 성인의 절반가량인 49.2%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외상후울분장애 자가측정 도구를 사용해 측정한 결과 5점 만점에 1.6점 이상인 경우로, 부당함이나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분노와 좌절감이 만성화된 상태다. 2019년 독일에서 실시한 유사한 조사 결과(15.5%)보다 3배 이상 많다. 특히 30대의 경우 13.9%가 ‘높은 수준의 울분’을 보여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높은 수준의 울분은 5점 만점에 2.5점 이상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상태를 의미한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는 11.4%, 40대는 11.8%, 50대는 11.9%가 높은 수준의 울분을 나타냈다. 반면 60세 이상은 3.1%로 가장 낮았다.

이번 조사에서 울분의 주요 요인으로는 낮은 공정세계신념, 낮은 계층인식, 주변의 몰인정·몰이해 경험 등이 지목됐다. 이 중에서도 ‘세상은 기본적으로 공정하다’고 믿는 정도를 의미하는 공정세계신념에서 20∼30대의 점수(3.13점)가 60대 이상(3.42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유 교수는 서면 인터뷰에서 “30대의 높은 울분 수준은 세상의 공정함에 대한 믿음이 낮은 것과 관련성이 있다”며 “특히 공정세계신념 점수의 차이가 유의미한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계층 인식도 울분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하층’이라고 인식하는 응답자의 60.0%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있는 반면 ‘상층’이라고 인식하는 응답자의 61.5%는 ‘이상 없음’ 상태로 나타났다.

울분은 단순한 감정 상태를 넘어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울분 수준이 높을수록 우울 점수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높은·심각한 울분’ 상태의 응답자 중 75.8%가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보였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자살 생각과의 연관성이다. ‘높은·심각한 울분’ 상태의 응답자 중 60.0%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이상 없음’ 상태의 응답자(9.0%)와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이번 조사는 올해 6월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