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7일 한 목소리로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를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처벌 강화를 주문하면서 관련 법 개정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느슨한 현행법으로 인해 지금까지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질러도 가해자의 절반 가량이 집행유예를 받는 등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다. 10대 미성년 여성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생∙교사∙여군 등 피해 대상이 늘며 이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여당뿐 아니라 국회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도 처벌 강화를 요구하고 있어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尹∙이재명 “딥페이크 근절 방안 마련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딥페이크 영상물은 단순 장난이라 둘러대기도 하지만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피해자가 미성년인 경우가 많고 가해자 역시 대부분 10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 당국에서는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며 “건전한 디지털 문화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교육 방안도 강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출입기자단과 만나 “입법이 필요하면 국회와 협의해 추진하고 기본적으로는 이런 것(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교육도 처벌과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일단 유포되면 확산·재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 강력한 처벌로 응분의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딥페이크 범죄 근절을 위한 국회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중앙당에 지시했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처벌할 수 있도록 미흡한 현행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사 당국은 그동안 뭘 했는지 묻고 싶다. 김건희 여사를 지키려는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국민을 위해 썼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 2월 이후 여가부 장관이 공석인데 여가부가 아무 역할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내달 4일 전체회의를 열고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및 유포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한 뒤 관련 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현행법은 ‘솜방망이’
‘딥페이크 처벌법'이라 불리는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허위 영상물을 제작·반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딥페이크물을 제작한 이들은 처벌 대상이지만 이를 시청하거나 소지한 이는 처벌되지 않는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단체방에 수천명이 모여 피해 여성을 희롱하고 개인정보를 주고 받아도 제작자가 아닌 이상 강력한 처벌이 어려운 것이다.
최근 인하대 사건의 경우 2020년부터 운영된 텔레그램 대화방에 참여한 1200여명이 여대생들의 얼굴에 나체를 합성한 사진을 돌려보며 피해 여성의 연락처,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대화방 참여자 중 일부는 피해자를 협박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원 대부분을 공범으로 볼 수 있지만 현행법으로는 사실상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아동 성착취물이나 실제 촬영 성착취물의 경우 제작·유포자뿐 아니라 소지자도 처벌을 받는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미온적 처벌이 이뤄진 데는 ‘실제’가 아닌 ‘허위’ 음란물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의 고도화와 피해 규모 확산을 고려해 법 개정 시 달라진 인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성범죄는 수사 측면에서도 범죄자를 지목하고 추적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이 부분을 보완하려면 ‘위장 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사관이 성착취물 소비자·구매자인 것처럼 가장해 범죄자에게 접근해 수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이 도입된 2020년 이후 성범죄가 기승을 부렸음에도 지난해까지 판결을 받은 사례는 71건에 그쳤고 그마저도 35건은 집행유예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