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긴 25일 0시30분쯤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근처에서 택시를 잡지 못한 한 노년 부부가 발을 동동 굴렀다. 20분 넘게 택시가 잡히지 않자, 부부는 아예 교차로 반대편에 각각 서서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예약’뿐 아니라 ‘빈차’ 등을 켠 택시도 부부를 지나쳤다. 택시는 모두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먼저 예약한 손님들 앞에 차례로 멈췄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옷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정모(68)씨는 “밤이라 택시도 별로 없는데 그나마 있는 택시들도 안 멈춘다”며 “택시 호출 플랫폼이 있다는 건 알지만, 노인들이 쓰기엔 영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중구 서울역 맞은편에서는 도로 한복판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70대 남성도 목격됐다. 이 남성은 “요즘엔 택시 잡는 게 더 어려워진 것 같다”며 “딸이 지도와 대중교통 앱을 설치해 주긴 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택시 앱 등 호출 플랫폼이 대중화하면서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커졌다. 거동이 불편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겐 택시가 그나마 접근성이 높은 교통수단인데,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노인들의 이동권에 제약이 생기고 있다. 노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 환경(UI)을 간소화하고 오프라인 호출 택시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에 대한 우려가 이어져 왔지만 플랫폼 업체의 개선 의지는 크지 않다. 대표적인 택시 앱인 ‘카카오T’는 노인용 UI를 따로 만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시니어 이용자들을 위해 택시 대신 불러주기 기능과 보이스 검색 외에도 전화 호출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노인을 위한 택시 플랫폼이 부족한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노인용 콜택시를 운영하기도 한다. 서울 은평구가 2022년 10월부터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백세콜’은 지난해 1545건이 접수돼 신청 건수가 증가 추세다. 다만 사업 참여 택시가 부족해 배차율은 30∼40%에 머물고 있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배차에 대응할 수 있는 택시 수가 부족하다”며 “백세콜 참여 택시 차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앱 설계를 보완하더라도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는 고령층이 사용하기 쉽지 않다”며 “고령층 친화적인 UI 체계를 만드는 한편 오프라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