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저축은행 오기노 감독이 레오를 포기한 건 ‘만용’일까, ‘혁신’일까

남자 프로배구 OK저축은행이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딱 하나 꼽으라면 역시 레오의 존재감이다. V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레오는 OK저축은행의 공격을 절반 가까이 책임지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에 부임한 오기노 마사지(일본) 감독은 시즌 초반만 해도 레오에게 의존하지 않는 배구를 하려 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 6전 전패하며 순위가 크게 하락했고, 4라운드부터 레오의 공격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리는 ‘타협’을 했다. 그 결과 OK저축은행은 4라운드에 6전 전승을 거두며 순위를 끌어올렸고, 결국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캐피탈과의 준플레이오프, 우리카드와의 플레이오프를 연달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레오가 고비마다 득점포를 가동해준 덕분이었다. 

 

레오를 더 보유할 수 있음에도 오기노 감독은 2024∼2025시즌을 앞두고 레오를 포기하는 결정을 했다. 이 선택이 자신의 배구 철학을 위한 ‘만용’이 될지, ‘신의 한수’가 될 수 있을지는 곧 개막하는 V리그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어쨌든 오기노 감독은 V리그 2년차를 맞아 자신의 색깔을 더 짙게 드러내기로 했다. 레오 대신에는 마누엘 루코니(이탈리아)를 영입했고, 아시아쿼터 외국인 선수로는 장빙룽(중국)을 선택했다. 

 

팀 공격을 조율해야 하는 세터 자리도 고민이다. 지난 시즌 주전 역할을 맡았던 곽명우는 가정 폭력 여파 등으로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고, OK저축은행은 그를 퇴출했다. 팀내 최고 연봉자인 이민규와 박태성, 강정민에 대한항공에서 방출된 정진혁을 품었지만, 누구를 쓸지는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다. 

 

새로 영입한 미들블로커 진성태와 아웃사이드 히터 신장호도 완전히 팀에 녹아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오기노 감독은 "우리 팀의 선수층이 더 두꺼워졌으면 좋겠다. 수준이 높은 선수들과 낮은 선수들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며 "이번 평가전을 통해 성과를 내는 선수들이 있는지 보고 싶다"고 밝혔다. 오기노 감독은 19명의 선수 전원을 훈련에 동참시키며 면면을 살피는 중이다. 레오에 의존하던 공격 형태에서 벗어나 모든 선수가 고르게 활약하는 조직력 있는 배구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과연 오기노 감독의 조직력 배구가 성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공격수 전원이 고르게 활약하는 배구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긴 하다. 그러나 V리그에선 고르게 활약하다 패하는 것보다 확실한 에이스에게 공을 몰아줘 이기는 배구가 득세해왔다. 오기노 감독은 "선수 한 명이 혼자 모든 걸 해결하고 돋보이는 플레이는 결국에는 팀이 분리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또 팀플레이를 하면 실수가 적어진다"며 자신의 배구 철학을 내세울 것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