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중·고 역사교과서…‘뉴라이트 성향’ 집필진 논란

내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쓰일 역사 교과서가 공개된 가운데 한 교과서의 집필진들이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교과서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 대신 ‘장기집권’ 표현을 쓰는 등 보수 색채가 묻어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를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등이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기자실에 비치돼 있다. 뉴시스

◆중학교 7종, 고등학교 9종 검정 통과

 

30일 교육부는 2022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과 중·고교 1학년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돼 교과서가 바뀐다. 

 

이목이 쏠리는 것은 중·고교 역사 교과서다. 특히 근현대사의 경우 보수·진보 진영에 따라 학자들의 시각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표현이 논란이 될 때가 많다. 

 

이번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검정 심사를 통과한 출판사는 중학교 역사Ⅰ·Ⅱ 7곳(▲지학사 ▲미래엔 ▲주식회사리베르스쿨 ▲비상교육 ▲해냄에듀 ▲천재교과서 ▲동아출판)이고, 고등학교 한국사Ⅰ·Ⅱ는 9곳(▲동아출판 ▲비상교육 ▲지학사 ▲주식회사리베르스쿨 ▲해냄에듀 ▲한국학력평가원 ▲천재교과서 ▲주식회사씨마스 ▲미래엔)이다.

보수 성향 서술이 들어갔다는 논란이되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연합뉴스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보수 성향’ 논란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다. 이번에 처음 검정을 통과한 이 교과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서술이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이날 세계일보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중 주식회사리베르스쿨 출판사를 제외한 8종을 확인한 결과,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에만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란 표현이 없었다. 또 이 전 대통령을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으로 실으면서 비중 있게 다뤘다.

 

다만 그렇다고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묘사한 것은 아니다. 교과서에는 “전국 곳곳에서 평화 시위를 전개하였지만 이승만 정부는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집권 연장을 위하여 노골적인 부정 선거를 자행했다” 등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들어갔다.

 

이밖에 ‘친일 지식인에 대한 시각’이란 주제탐구 부분에선 친일 행각이 논란이 된 인물들에 대해 ‘이들이 왜 친일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자’는 내용이 있는 것도 논란이다. 일각에선 친일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읽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보 성향 교원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승만, 박정희 등 독재의 길을 걸었던 자들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서술을 담긴 했으나 왜 장기집권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애써 두둔하는 표현이 다수 기재되었다”며 “일제에 협력한 친일 지식인들과 일제 치하에서 자치권 획득을 주장한 자치론자들이 친일 행보를 걸었던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되묻는 표현을 기술함으로써 친일 행적을 일부 정당화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비판했다.

 

◆집필진들 ‘뉴라이트’ 의혹도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가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교과서 집필진들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 교과서의 집필자는 ▲강병수 하빈학연구소 소장 ▲권지영 창원과학고 교사 ▲김두진 전 고려대 연구교수 ▲배민 부산외대 교수 ▲이병철 문명고 교사다. 

 

진보 교육계에선 이들 중 상당수가 뉴라이트 성향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일부 필진은 과거 세미나 등에서 보수 성향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교조는 “한국학력평가원은 올해 처음 교육부 검정에 통과한 민간 출판사로, 갑작스럽게 나타났음에도 역사 교과서 검정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계와 역사 교사들 사이에서 밀실 교과서 제작이란 논란이 불거졌다”며 “일부 저자가 뉴라이트 인사란 의혹까지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연이어 정부 기관 소속 인사들의 뉴라이트 논란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교과서에 뉴라이트 역사관이 담겼다는 논란을 자초할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교육부의 검정 결과에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표현 차이도…전보다 강조된 ‘자유민주주의’

 

전교조는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서술에서 성 착취 행위를 누락시키고 “끔찍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가 불분명한 서술을 했다는 점도 비판했다. 다만 ‘위안부’의 경우 한국학력평가원 외에도 많은 출판사가 성 착취 피해를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군 ‘위안부’의 성적 피해 사실을 직접 표현한 곳은 ▲동아출판(“피해자들은 구타나 고문, 성폭력 등 끔찍한 삶을 강요당했다”) ▲천재교과서(“성 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미래엔(“수많은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가 성 노예로 삼았으며”) 뿐이었다. 한국학력평가원 등 5종은 “끔찍한 삶을 살게 하였다” 등 ‘위안부’ 피해에 대해 간접적으로만 설명했다.

 

한편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기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의 역사과 성취기준에 ‘자유민주주의’란 용어가 포함된 데 따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는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나오는 단골 논쟁 소재다. 보수 진영은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는 데다가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북한의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쓰일 수 있다며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은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보다 상위 개념이란 입장이다. 

 

2020년부터 사용된 역사 교과서의 경우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집필기준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수정되면서 논란이 됐고, 교육부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모두 쓸 수 있도록 했다. 이후 2022년에는 교육과정 개정안 시안에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빠졌다는 점이 논란이 됐으나 교육부가 다시 ‘자유’를 넣어 수정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교과서들에 모두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