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구 주도할 ‘플레이어’가 없다… 초라한 韓 AI 생태계 [심층기획]

AI 패권 경쟁 뒤처진 韓

年 5892조 가치 생성형 AI 중요성 확대
美·中 중심 전세계가 국가 대항전 돌입
中 칭화대 ‘유니콘급 스타트업’ 등 두각
美 빅테크 막대한 자금력 바탕 ‘주도권’

韓 생성형 AI 연구 뛰어드는 기관 극소수
‘출판물 인용’ 연구조직은 서울대 유일
기술모델 개발 전무·인재 유출 현상도
“AI 산업 관련 기본법 제정이 선결과제”

중국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는 ‘중국 생성형 인공지능(AI) 생태계의 뿌리(root)’라 불린다. 미국 싱크탱크인 정보혁신재단(ITIF)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칭화대에는 즈푸AI, 바이촨AI, 문샷AI, 미니맥스, 01.AI 등 5개의 중국 내 유니콘급 생성형 AI 스타트업의 번식지(breeding ground)다.

 

중국에선 이들 5개사를 ‘AI우사오후(五小虎·다섯 작은 호랑이)라 부른다고 한다. 즈푸AI는 칭화대 직속이고, 바이촨AI, 문샷AI, 미니맥스는 그 학교 교수나 동문이 설립한 회사다.

 

ITIF는 “즈푸AI가 (챗GPT를 만든) 미국의 오픈AI와의 경쟁에서 중국의 선두 주자”라는 현지 평가를 전한 뒤 “중국 스타트업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최근 서구의 최고 (AI)기업들조차 그들의 모범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즈푸AI는 2020년부터 거대언어모델(LLM)에 투자했다. 지금은 중국어와 영어 작업 모두 가능한 고유 모델을 만들어 영어 기반 미국 AI기업을 위협 중이다. 직원 800명 규모인 회사의 5월 기준 기업 가치는 약 30억달러(약 4조원)다.

 

즈푸AI는 계속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모델베스트, 셍슈, 링신AI를 포함해 칭화대와 관련된 다른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칭화대를 중심으로 확장 중인 중국판 AI 생태계의 한 단면이다.

 

한국의 AI 생태계 중심에는 서울대가 있다. 국내 최대의 AI 연구기관인 서울대에는 서울대AI연구원이 있다. 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등 AI 관련 교수 등이 대표나 이사진, 자문역으로 창업한 AI창업기업이 현재 꽤 많다. 하지만 이들은 LLM 사업에 집중하는 중국 칭화대 출신 등의 스타트업과 달리 특정 업역·영역에 한정한 소규모 기업이다.

 

◆AI서 치고 나가는 중국

 

치열해지는 AI생태계 미국·중국 간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두각이 부각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해당 생태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 우려된다.

 

지난 10년간 생성형 AI 관련 출판물 인용 부문 상위 10위에 서울대 1곳, 특허를 가장 많이 공개한 기업·연구 조직 등 상위 20곳에 삼성전자 하나만 들어 있을 정도로 한국의 AI 생태계 현실은 초라하다.

 

자신만의 특허나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존 거대 AI기업의 툴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인용해 사용해야 한다. 이런 경우 산업 주도권이나 경쟁력 확보는 언감생심이다.

2일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생성형 AI 모델은 AI 분야 중 비교적 최근에서야 빛을 발한 분야다. 지난 수년간 하드웨어 발달로 생성형 AI를 뒷받침할 만한 연산능력이 갖춰졌고, 2017년 등장한 구글의 트랜스포머(입력 데이터에서 중요한 정보를 추출해 출력 데이터를 생성하는 딥러닝 모델), 2022년에 선보인 오픈AI의 챗GPT 등이 세계를 ‘AI 홀릭’으로 이끌었다.

 

다만 생성형 AI는 아직 시작 단계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전체 AI 특허군 공개 건수 23만건 가운데 생성형 AI 관련 특허군은 1만4080건으로 아직 비중이 작은 것도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대게 신규 특허 출원과 공개 사이에 18개월의 시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성형 AI가 곧 AI 전체를 아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켄지는 생성형 AI가 연간 4조4000억달러(약 5892조원)의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도 아직 주도권은 미국에

 

생성형 AI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는 현재까지 미국이다. 오픈AI·구글·메타·앤스로픽 등 생성형 AI 개발을 이끄는 주요 기업이 모두 미국 기업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이른바 ‘빅테크’ 들이다.

 

하지만 ‘미래 자원’, ‘혁신의 기반’으로 볼 수 있는 연구개발(R&D), 지적재산권(특허) 분야는 다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분석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성형 AI 특허군을 공개한 나라는 3만8210건의 중국이다. 미국이 6276건으로 2위를 기록했고, 한국은 4155건 3위다.

또한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생성형 AI 특허군을 공개한 상위 기관 20곳을 살펴보면 중국이 13곳, 미국이 4곳이다. 중국은 텐센트, 바이두 등 정보기술(IT) 기업뿐 아니라 전통적인 보험회사에서 글로벌 핀테크 핵심으로 부상한 핑안보험그룹, 연구 조직인 중국과학원 등이 1∼4위 상위권을 독차지했다. 특히 중국과학원은 연구기관임에도 미국 IBM(5위)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고 바로 중국이 미국을 제칠 상황은 못 된다. 연구의 고도화 정도를 판별하는 생성형 AI 관련 출판물 인용 부문을 보면 미국의 알파벳(구글)이 인용 횟수 4만7568회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메타, 딥마인드, 엔비디아 등 다른 미국 기업도 상위권에 다수 포진했다. 이 기간 미국의 생성형 AI 과학 출판물 인용 횟수는 총 16만9693회로 2위 중국(10만310회)과 큰 격차를 보이며 사실상 AI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ITIF는 “중국은 AI 특허 수가 더 많지만 미국은 특허 품질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中에 열세 한국, 인력유출까지

 

한국은 양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미국과 중국과 비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생성형 AI 특허군을 공개한 상위 기관 20곳에 한국은 삼성전자(7위) 단 한 곳만 들어 있다. 2023년 기준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 AI 연구 결과물을 가진 10개 연구조직과 기업 순위에서 한국은 서울대(7위)만 포함됐다. 또한 10년간 국가 기준으로 연구 논문 인용 횟수 부문에서 한국의 순위는 미국과 중국, 영국, 캐나다에 이은 5위에 그쳤다.

 

한국은 AI R&D ‘플레이어’가 적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도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분야이다 보니 R&D에 뛰어드는 기관이 삼성전자, 서울대 등 극소수에 그친 것이다. 국내 생성형 AI 연구가 스타트업 등이 중심이 돼 자체적으로 AI 생태계를 조성하기보단 챗GPT 등 기존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그치는 분위기 또한 AI 주도권 확보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산하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의 ‘2024 AI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생성형 AI 기술을 뒷받침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 전무했다. AI 인재 이동 지표도 -0.3으로 음수값을 기록해 인재 유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KIAT는 생성형 AI 산업 발달을 위한 선결과제로 관련 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봤다. 최근 논란이 된 딥페이크 이슈 등 AI 윤리와 산업 표준, 연구 육성 지원 등을 규정하는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이 국회에서 지체되고 있어서다. 중국은 올해 초 AI 산업 표준화 지침 초안을 발표한 뒤 2026년까지 50개 이상의 국가·산업 전반의 AI 표준을 수립할 계획을 세웠고, 미국은 지난해 10월 AI 규제 관련 포괄적 국가 전략 개발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연방 기관에 하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