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대전 중구 선화동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사)을 지나던 시민 박봉기(44)씨는 화들짝 놀랐다. 전시관 정문 담에는 5공화국 때나 볼법한 ‘반공’·‘방첩’ 문구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황당했던 박씨가 정문에 서 있던 직원에게 “저 신고 문구가 왜 붙어있냐”고 묻자, 경비원은 손으로 현관 쪽을 가리켰다. 현관 위에 걸린 플래카드엔 ‘5월은 방첩승공의 달’이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글귀 밑엔 ‘서울 내무부 치안본부’라고 한자로 적혀있었다. 그제야 박씨는 이곳이 영화촬영장소인 것을 알았다.
박씨는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이런 문구가 여기 붙어있나 싶었다”면서 “영화 촬영 중이라는 안내 문구도 없다보니 ‘정부 선전 문구’로 오해할 뻔 했다”고 머쓱해했다.
이날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선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파인’이 촬영 중이었다. 올해만 이곳에서 영화 ‘파인’ 촬영이 3회 있었다.
대전이 각종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몰이하고 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근현대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전 원도심은 영화·드라마 제작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1932년에 지어져 국가등록문화재 18호인 옛 충남도청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근현대 역사를 간직한 공간으로 2012년 12월까지 80년간 도청사로 사용됐다. 대전에 남아 있는 근대 관청 건물 중 가장 오래됐으며 전국적으로도 원형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근대 도청 건물이다.
2일 대전시에 따르면 올해 영화 ‘파인’을 비롯, ‘전력질주’, ‘파반느’, ‘지옥에서 온 판사’, ‘약한 영웅2’ 등이 대전에서 촬영하고 있다. 전세계를 열광시킨 넷플릭스 시리즈로 올해 12월 방영 예정인 ‘오징어게임 2’, 하정우 주연 영화 ‘하이재킹’, 디즈니플러스에서 상영 중인 ‘폭군’ 등은 지난해 대전에서 촬영을 마쳤다.
이외에도 관객수 100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국민 영화 ‘변호사’와 ‘서울의 봄’과 함께 국민 드라마로 사랑을 받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스터 션샤인’ 등 유명 드라마에서도 대전은 주요 배경이 됐다.
대학 캠퍼스도 주요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근현대건축물인 한남대학교 선교사촌과 탈메이지기념관 등은 옛 충남도청사와 함께 영화 단골 촬영지이다. ‘서울의 봄’과 ‘재벌집 막내아들’이 이곳에서 촬영했다. 충남대학교는 TvN 드라마 ‘선재업고튀어’와 영화 ‘더킹’, ‘범죄와의 전쟁’ 등의 주요 촬영지였다.
액션, SF 등 특수 촬영이 가능한 공간과 설비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영화·드라마 관계자들이 대전을 찾는 이유이다.
유성구 도룡동 문화산업 진흥원 인근에는 대규모 촬영 스튜디오가 집적돼 있다. 다양한 실내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 큐브와 와이어를 이용한 액션 장면 촬영이 가능한 액션영상스튜디오, 수중촬영이 가능한 아쿠아스튜디오 등이 있다.
대전을 찾는 제작사는 매년 늘고 있다.
대전에서 촬영된 영화·드라마는 매년 40여건에 이른다. 2019년 42건, 2020년 36건, 2021년 31건, 2022년 35건, 지난해 31건, 올 상반기 18건에 달한다.
시는 영상산업 발전을 위해 매년 작품 지원에도 나선다. 지난해 3억5500만원, 올해는 2억5000만원을 편성했다.
시는 드라마 촬영인력과 출연진의 대전 숙박과 경비 지출 등 지역총소비액이 지난해엔 지원금의 4배 가까운 8억6600만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대전시의 재정 지원으로 영화·드라마측의 촬영 비용 부담을 줄여주고 교통통제 등에 적극협력하면서 도시홍보와 지역경제활성화 성과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