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인권침해 견제·처벌 ‘한국판 잘츠기터’ 기대 무색 [北 인권기록 관리 허술]

허술한 北인권기록보존소 보고서

모호한 통계에 보존소 관련 내용 3줄
언론 취재하자 “민감하다” 모르쇠 일관
2023년 美 매체엔 분류명·수치까지 공개

법무부, 사건화해 ‘인명카드’ 제작 보존
사건화 기록 기준은 명확하게 답 못해

법무부 북한인권기록소 실적 관련 ‘허술한 국회보고’와 대국민 정보 공개 관련 소통은 편의적 비밀주의의 반영이란 평가다.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나마 운영되는 곳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총체적 난맥상만 노출했다는 것이다.

 

보존소는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에 따라 설립된 기관으로, 2017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서독이 동독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견제하고 동독 주민 보호에 도움이 되고자 통일 전부터 동·서독 접경 도시 잘츠기터에 세운 중앙범죄기록소가 모델이다. 동·서독 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인권이라는 가치와 기록의 중요성에 따라 1961년부터 30년간 유지되며 범죄기록 약 4만건을 수집했다. 

 

지난해 8월1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이전 현판식.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왼쪽 네번째) 등이 제막식을 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보존소 정보 공개·비공개 기준도 없는듯 주먹구구식 공보

 

‘한국판 잘츠기터’가 될 거란 기대를 모았던 보존소 역시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록의 중요성이 큰 기관이다. 보존소 운영규칙에도 “자료의 진본성·무결성·신뢰성 및 이용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다. 탈북민이 입국하면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면접 조사를 하고, 법무부가 이 내용을 넘겨받아 법적으로 사건화해 차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형태로 일종의 ‘카드’를 만들어 분류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맡는다.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정부 시절 과천정부청사에 있던 사무실이 법무부 용인연수원으로 쫓겨나듯 옮겨지거나 파견검사가 축소되는 등 조직이 부침을 겪기도 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보존소 정상화’를 내세웠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4명에서 0명으로 줄었던 파견 검사는 윤석열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난 지난해 9월에야 ‘뒷북’ 충원됐다. 이번 국회보고자료에서는 보존소 통계가 모호하게 기재돼 혼란을 유발한 것뿐 아니라, 보존소 관련 내용이 단 3줄에 불과할 정도로 부실했다.

 

국회보고자료 상세내용을 추가 취재하는 언론에 법무부 대변인실은 “북한 관련 내용이라 민감하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법무부 대변인실로 언론 창구를 일원화해놓고도 기본적인 보존소 업무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가해자·피해자 등”에서 “등”의 분류명을 묻는 말에 “참고인 등 폭넓은 의미의 제3자”로 포괄적인 답을 하는가 하면, 가해자, 피해자, 참고인 수치나 비율을 물어도 답변하지 않았다. 제3자나 참고인에 들어가는 사례가 어떤 것인지, 가령 공개처형 목격자는 피해자인지, 참고인인지 질문에도 마찬가지였다.

 

법무부는 지난해 미국 매체 자유아시아방송에는 “2023년 4월11일 기준 인명카드 총 3767건 중 가해자 인명카드는 1738건, 피해자는 750건, 참고인은 1279건”이라고 분류명과 수치를 공개했다. 보존소 수집 정보가 어디까지가 보안이고 어디까지 공유할 사안인지 기준도 없는 듯 주먹구구 행정인 셈이다.

 

정부가 북한인권법 제15조에 따라 국회에 제출한 ‘2024북한인권증진 추진현황’ 1쪽에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실적으로 ‘가해자·피해자 등 인명카드 4071장 작성’이 기재된 모습. 2024북한인권증진추진현황 캡처

법무부는 사건화하는 기록의 기준이 국내법인지, 북한법인지, 국제법인지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지만, 세계일보 확인 결과 이 기준은 보안사항이 아니라 법무부 훈령으로 공개된 정보였다. ‘북한인권자료 관리에 관한 규정’에는 “유엔세계인권선언 등 국제인권규약에 규정된 자유권 및 생존권과 관련된 내용,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사실과 관련 내용”을 “영구보존”한다고 돼 있다.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3일 통화에서 “정확한 팩트여야 함은 물론, 가해자에 대한 기록에서도 (피해자) 조사 과정인지 구금 과정인지 등 구분이 있을 수 있고, 이런 데이터 관련 사항을 꼭 비공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것을 형식적으로 시행은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인 경고 등 정부의 책무를 다하는 자세로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장은 “문재인정부 때는 북한을 자극할까봐 비공개했던 데이터들을 현 정부 들어서는 공개도 더 하고 활성화하고 있는데, 향후 통계를 더 정확히 발표하기 위한 기준 마련 등 신뢰성 제고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정확한 숫자를 밝히는 것은 보안 문제와 상관이 없다”며 “이름들이 다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치는 정확히 관리해야 하고, 그것을 잘 유지하는 것이 공무원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인권재단 출범 막는 동안 되레 통일부에 부정적 영향

 

북한인권재단 출범도 진전이 없다.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는 재단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북한인권 실태 조사·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교섭단체 몫 이사 추천을 보류하면서 출범이 되지 않은 채로 8년이 흘렀다. 현재 통일부 장관 직속 북한인권증진위원회를 만들어 재단 역할을 맡기고 있고, 이행은 통일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난 공공 재단을 만들어 북한인권이라는 보편적 이슈를 다루자고 했던 것인데, 되레 북한이라는 카운터파트가 있는 통일부가 곤란한 임무를 떠맡는 셈이 됐고, 정권교체에 따라 통일부의 역할만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하게 된 상황이 됐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한 만큼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가 있던 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관련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너무 한가한 요구”라며 “여야 간에 최소한의 신뢰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이것 하자, 저것 하자’고 하면 일이 이뤄지겠나”고 일축 한 바 있다. 이날 윤종군 원내대변인도 통화에서 “관련된 논의가 제가 아는 선에서 있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국회가 법을 만들어놓고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여야 간 설득이나 대화 노력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