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가로서는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미술관 외관에 설치될 조형작품 의뢰를 받은 이불(60) 작가가 제작 과정을 ‘신병’(神病)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 작가가 지난 1년간 메트 외관에 설치될 조형물 4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앓아누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가 “신병을 앓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메트는 매년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조각 작품으로 건물 외관을 장식한다. 지난해에는 이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이 작가의 작품은 12일부터 내년 5월까지 건물 정면을 장식하게 된다.
이 작가는 작품이 전시될 미술관 외벽을 구상적 요소와 추상적 요소를 결합한 4개의 대형 조형물로 구상했다.
이 중 2개는 현재 메트가 소장하고 있는 사이보그 연작의 세계관과 비슷하다. 이 작가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 조각상인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언급하며 “신화 속 캐릭터를 닮은 것 같지만 현대 조각 같기도 하다”고 짚었다.
나머지 2개는 음식물을 토해내고 있는 대형견을 묘사했다. 이 작가는 과거 키우던 진돗개가 속이 불편할 때면 일부러 풀을 뜯어 먹은 뒤 음식물을 토해낸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인터뷰에서 지난달 초 서울 자택에서 거대한 지네에 왼쪽 발뒤꿈치를 물린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발뒤꿈치에 큰 못이 관통하는 듯한 고통과 함께 일종의 계시를 받은 기분이었다”며 마무리 작업에 전념하라는 신호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로 꼽히는 이 작가는 1964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나 1982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기존의 조각 전통을 탈피하기 위해 천, 솜, 유동적인 철사 등 ‘소프트(부드러운) 조각’을 사용한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에 초대돼 ‘화엄’이란 작품을 전시하면서부터다. 이 작가는 반짝이로 장식된 생선 63마리의 썩는 과정과 냄새를 전시해 시각문화가 중심이 된 미술의 역사를 비판하려 했는데, 악취로 개막 다음 날 일부가 철거되며 화제가 됐다.
이후 뉴욕 뉴 뮤지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등 세계 최정상급 미술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 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1999년과 2019년 두 차례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