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박2일의 몽골 방문 일정을 마치고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 유엔 산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푸틴을 상대로 발부한 체포영장은 끝내 집행되지 않았다. ICC 설립을 위한 로마 협약 당사국으로서 의무 이행을 거부한 몽골 정부를 겨냥해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자 푸틴에게 레드카펫만 깔아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dpa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늦게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푸틴은 이날 의장대 사열 등 공식 의전 행사 참석,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같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후 그는 동방경제포럼(EEF) 행사가 열리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푸틴은 EEF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찾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고위급 인사들을 접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이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ICC의 체포영장을 집행할 것을 촉구했던 국제사회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ICC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1년여가 지난 2023년 3월 푸틴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어린이들을 납치해 강제로 러시아에 이주시켰다는 전범 혐의를 적용했다. ICC 설립 협약 당사국은 ICC의 모든 조치를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으며 몽골 또한 그 당사국에 해당한다.
당장 안드리 코스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푸틴은 몽골이 처한 지정학적 취약성을 십분 악용해 몽골 측에 굴욕을 안겼다”며 “푸틴 체포를 거부한 행위는 몽골의 국제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몽골 정부의 행동은 푸틴의 전쟁범죄 책임을 공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해 몽골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것”이란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EU)도 대변인을 통해 “몽골이 ICC 협약 당사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ICC를 산하 기관으로 거느린 유엔은 한층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국제기구 설립 규약에 서명한 국가는 해당 기구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모든 서명국들은 국제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핏 원칙론을 표명한 것처럼 들리나 몽골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다만 그는 푸틴이나 몽골을 콕 집어 말하진 않았다.
미국도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러시아와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 낀 몽골은 국가안보를 위해 러시아와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다만 최근 들어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몽골이 훨씬 더 큰 두 이웃나라 사이에 끼어 있다는 입장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몽골이 법치를 계속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몽골과 달리 미국은 ICC 설립 협약 당사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