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건설 노동자가 고압 전류에 감전돼 숨진 가운데, 사고 현장을 비추던 폐쇄회로(CC)TV가 굳이 각도를 바꿨다는 점과 사측이 유족에게 사과보다 먼저 처벌불원서를 내밀었다는 점이 충격을 주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소방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4시10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장비(CPB)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김기현(21)씨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현장 관계자 신고로 출동한 소방 당국은 오후 5시30분쯤 김씨를 구조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김씨는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사고 직후 원청 건설사 측이 김씨를 즉시 구할 수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늑장 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쓰러진 청년 확대하더니 각도 바꾼 CCTV…1시간 10분 지나서야 신고
3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사고 직전 김씨는 리모컨이 고장난 타설 장비 전원을 직접 끄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가 전원 장치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고압 전류에 감전돼 몸을 떨다 쓰러지는 모습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쓰러진 김씨를 비추던 CCTV가 30분쯤 지나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쓰러진 김씨를 확대한 다음 순간 카메라 앵글이 돌연 김씨가 아예 보이지 않는 쪽으로 크게 돌아갔다. 40여 분 동안 사고 현장이 아닌 먼 곳을 비추고 나서야 CCTV 화면은 혼자 쓰러져 있는 청년 쪽으로 돌아왔다.
소방에 신고가 접수된 것은 이즈음으로, 사고 이후 1시간 10여 분이 넘게 지난 지난 5시 26분이다. CCTV를 관리하는 원청 건설사는 CCTV가 각도를 바꾼 것, 사고 현장 확인이 늦어진 것에 대해 ‘경찰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며 두루뭉술한 답변만을 내놨다.
◆“빨리 공사하게 서명해달라”…사과 없이 처벌불원서 요구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씨가 숨진 후 2주 후 원청 측으로부터 날아온 서류는 사과문이 아닌 ‘사망한 김 씨의 부모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처벌불원서였다. 하청업체를 통해 전달된 처벌불원서에는 ‘하청과 원청 최고 경영자와 임직원 등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 빨리 공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부탁드린다’고 적혀 있다.
이는 원청의 책임도 묻는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 어머니는 “(원청에서는) 아무런 연락과 사과가 없었다”며 “공사를 빨리 진행하게 조치해달라는 문구가 너무너무 화가 났다. 보자마자 그 사람들하고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냥 저희는 합의 못 한다고 나왔다”고 털어놨다.
하청업체 대표는 자신이 처벌 받을 거라면서 “원청업체는 관련이 없다”고 감싸고 나섰다. 김씨 아버지는 “전기적으로 문제가 있던 장비고, 안전 관리자도 없었다. CCTV로 누구 모니터한 사람도 없다”며 원청과 하청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