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년 만에 내놓은 국민연금 개혁 단일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이 시급한 만큼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세대별 차등화 방안과 자동조정장치 등 개혁 방향성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다.
소득보장파인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등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방안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개혁안에 대해 “위장된 재정안정화, 위장된 연금 삭감 개혁이며 세대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반통합적 안”이라며 “국회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간담회에서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에 대해 “노인부양 문제를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해 해결한다는 공적연금의 기본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전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되 세대별로 인상 속도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50대 가입자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 인상하는 식이다. 하지만 조세와 사회보험은 능력비례원칙에 따라 ‘더 많은 소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금액을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라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연금액을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 등에 연동해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에 대해선 ‘연금 삭감 장치’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지금도 낮은 국민연금액을 더 삭감해 심각한 노인빈곤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수십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금행동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일본식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할 경우 1992년생(32세)의 총 연금 수급액은 기존 대비 80.72%로 떨어진다. 총 연금 수급액이 1억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8000만원만 받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의 장기 안정성을 위해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되레 지속가능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급여를 삭감하면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은 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한다고 생각해 돈을 안 내려고 할 것”이라며 “지속가능성은 재정도 중요하지만 신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 교수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급여가 깎여서 매력도가 떨어지고 가입자가 줄어든다”며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약화하는 개악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개혁안으로 도출된 문제들은 ‘언젠간 겪어야 할 고통’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재정안정파인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자동조정장치에 대해 “연금액이 물가 인상만큼 조정되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질 수 있지만, 기대여명이 길어질수록 총 급여액은 늘어난다”고 말했다. 세대별 차등화에 대해서는 “50대의 경우 4년 동안 4%포인트 올리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보험료를 낼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올리는 게 맞다”고 했다. 석 교수는 “국민연금의 가장 지속가능한 수단은 보험료 인상”이라며 “보험료율을 진작 올려야 했는데 미뤄 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금연구회도 세대별 차등화에 대해 “오랜 기간 방만한 제도 운영에 대한 앞선 세대의 자기반성 측면을 보여줄 수 있다”며 “적절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소득대체율 42%의 수지균형을 달성하려면 보험료율을 20.8%로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도 수급액이 전년보다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이날 M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다만 이 차관은 연금 인상분이 물가상승분에 미치지 못할 수는 있다고 했다. 또 “장치를 먼저 도입한 일본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받는 돈을 내년에도 그대로 주는 사례는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차관은 “어르신들을 정말 잘 보살피는 한편 세대 간 형평성도 지키면서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를 만들어 가겠다”며 “국회에서도 심도 있게 논의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부안대로 연금개혁이 실행될 경우 누적수지 적자 규모는 2093년 기준 2경1669조원에서 2776조원으로 급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