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필리핀 소녀의 6138일간의 기적 같은 새 생명 고군분투기 [강승우의 땀터뷰]

④ 선천성 심장 질환 가진 ‘에바’ 이야기
‘땀터뷰’는 우리 동네 소시민들이 흘리는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그들 일상 속으로 들어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입니다. 모두 공감하는 재미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언제나 푸근하게 볼 수 있는 옆집 아저씨, 단골가게 이모 같은 사람들이 사연의 주인공들입니다. 주인공이 되고픈 분들은 주저 말고 연락주세요. 고민은 기사만 늦출 뿐입니다. [편집자주]

 

◆땀터뷰 들어가기 전…프롤로그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땀터뷰로 인사를 드립니다.

 

연재가 끝난 줄 아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꾸벅). 다들 그렇지만 저 역시 본업에 충실하느라 조금 바빴습니다. 하하;;;

 

사실 땀터뷰는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가장 힘든 거 같습니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도 어렵게 찾았습니다. 그런 만큼 저 혼자 알고 있기엔 너무 아쉬워 부랴부랴 글을 적었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얼른 제가 취재한 사연 알려드려야겠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 속으로 한번 빠져보실까요?

필리핀 소녀 에바(오른쪽)가 심장병이 완치되고 난 후 기뻐서 엄마에게 뽀뽀하고 있다.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의 특별했던 미사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청와대 바로 옆에 있는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는 3대(代)가 모인 특별한 미사가 열렸다.

 

주한교황청대사는 바티칸의 교황을 대신해 우리나라에 파견된 만큼 가톨릭계에서는 그 권위가 상당하지만 정작 이곳은 가톨릭 신자들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그래서 왠지 은밀하면서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그런 곳이다.

 

믿는 종교가 없어 살면서 교회나 성당은 근처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내가 주한교황청대사관이라니…초대 받은 저 역시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 새삼 이 직업의 만족도가 +10 되는 느낌이었다.

 

대사관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에 의외인 것도 잠시 조반니 가스파리 대사가 우리 일행을 환한 미소와 함께 따뜻하게 반겨줬다.

 

이날 특별 미사의 주인공은 멀리 필리핀에서 온 17살 소녀였다. 이름은 Evah Nicole Celis Bawit이라고 하는데, 줄여서 ‘에바’다.

 

에바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질환이 있었다. 정확한 병명은 ‘팔로4징증’(tetralogy of Fallot)이라고 하는데, 4가지 해부학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선천성 심장 질환이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1~2세까지 사망률이 46%에 이르고, 20세까지 사망률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필리핀 현지 의료수준과 열악한 에바의 가정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서는 다들 에바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체념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에바는 15살이 되던 해까지는 큰 탈 없이 자랐다. 현지 동네에서는 모두 ‘기적’이라고 했단다.

 

그러다 지난해 초부터 에바의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 병의 증상 중 하나가 ‘청색증’인데 호흡이 가빠지면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자주 일어났던 것이다.

 

여의치 않은 형편 탓에 갑자기 닥친 위기의 순간이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할 뿐, 할 수 있는 게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질환이 있었던 필리핀 소녀 에바가 수술을 앞두고 수술대에 올라가 있는 상태.

◆하루가 지옥 같던 삶, 영화 같은 반전 일어나

 

고통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하루가 지옥 같던 에바에게 영화 같은,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 있는 사도 요한 윤종두 신부가 에바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서 말이다.

 

에바와 윤 신부의 인연이 이어지게 된 것도 드라마틱하다.

 

에바의 엄마 ‘레멜치’는 큰딸을 살리기 위해 필리핀 현지 심장 재단 등에 등록하고 딸 차례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딸을 살릴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는 몇 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사실상 시한부 삶을 사는 딸을 엄마로서는 속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도저히 자국에서 버는 수입으로는 딸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레멜치는 한국행이라는 큰 결정을 하게 된다.

 

레멜치는 장기인 노래를 살려 창원에서 밴드 보컬을 맡으며 공연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창원이주민센터장을 맡고 있는 윤 신부를 만난 자리에서 아픈 딸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이 만남으로 딸의 운명이 바뀌게 될 줄 이들은 전혀 몰랐다.

 

윤 신부는 가엾은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간절한 그들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에바의 수술뿐만 아니라 수술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국내의 한 의료진이 나타났다.

필리핀 소녀 에바가 심장병 완치 판정을 받고난 후 조반니 가스파리 주한교황청대사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고 있다.

◆한시가 급한데,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첩첩산중’

 

에바의 심장병을 한국에서 고칠 수 있다는 낭보가 필리핀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런데 에바가 실제 수술을 받기까지는 전혀 순탄하지 않았고, 험난했다.

 

에바의 간병을 위해 보호자 역할을 할 이모가 같이 출국해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모의 출생신고서에 띄어쓰기가 잘못돼 있다는 서류상 오류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 이모의 여권은 발급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이를 바로 잡는 데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하면서 윤 신부와 에바의 가족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윤 신부의 노력으로 어렵게 수술할 의료진과 수술 기금을 마련했는데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일분일초가 급한데 6개월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윤 신부는 직접 필리핀에 가서 에바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한 고비를 넘기나 싶었는데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에바의 출국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필리핀 자국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증명서가 필요했다.

 

필리핀 복지부에 가서 떼를 써보기도, 설득도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또 다시 윤 신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고, 장시간에 걸친 설득과 항의 끝에 출국 허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에바 엄마가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궁금해 하실 독자들이 계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면 레멜치가 일하는 곳의 업무 환경이 레멜치에게 그리 협조적이지가 않았다고 한다.

 

레멜치가 쉬는 동안 대체인력을 구한다는 조건을 달아 겨우겨우 합의가 됐는데 한시가 급했던 에바의 수술 일정도 그에 맞춰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은 많지만 이 부분은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이야기하고, 다시 에바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필리핀 소녀 에바가 심장병 완치 판정을 받은데 감사하며 사도 요한 윤종두 신부가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특별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대수술…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나

 

이런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20일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국내 한 병원에서 에바의 1차 수술이 진행됐다.

 

다행히 수 시간에 걸쳤던 1차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아 완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그런데 2차 수술 일정을 두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됐다. 국내 의정 갈등으로 인한 사태가 악화되면서 에바 수술 일정에도 차질을 빚게 된 것.

 

다시 윤 신부는 백방으로 나섰고, 윤 신부로부터 사연을 들은 한 의료진이 선뜻 나서기로 결정하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1차 수술 후 6개월 뒤 진행한 2차 수술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재활 치료까지 마친 에바는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지난 7월31일 에바는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았다. 태어난 지 6138일 만에 자신을 평생 괴롭혔던 병으로부터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조반니 가스파리 주한교황청대사가 심장병 완치 판정을 받은 필리핀 소녀 에바의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땀터뷰를 마치며…에필로그

 

사실 이 모든 건 윤 신부의 활약이 매우 컸다.

 

에바의 입국부터 수술 병원을 알아본 것도, 2차에 걸친 대수술에 따른 큰 수술비와 의료진을 구한 것도 윤 신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의 특별 미사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에바의 새 생명을 기리는 축하연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취재를 마무리하기 위해 만난 에바는 언제 아프기라도 했냐는 듯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특히 커다란 눈은 아주 똘망똘망했다.

 

저는 에바에게 “이제 무엇이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에바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픈 사람을 간호하고 도와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에바의 완치를 기념하며 담소를 나누는 그 가족을 보고 있자니 윤 신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지금 보니 당신은 한 소녀만 살린 게 아니었습니다. 작은 사랑과 관심이 모여 기적을 만든 것 같습니다. 당신과 이들 가족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