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거주자가 국내법을 위반한 사실을 알고도 특별한 이유 없이 귀국하지 않았다면 체류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지난 7월31일 국제조세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2억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국내를 오가며 사업을 운영하던 사업가다. 그는 2016년 2월29일 기준 스위스 은행계좌에 1783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221억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국제조세조정법에 따르면 해당 연도의 매월 말일 중 해외 금융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다음 연도 6월 중으로 계좌 정보를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의무 위반 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위반금액의 13~20% 수준의 벌금이 부과된다.
과세당국은 2022년 5월 A씨의 계좌를 조사해 신고 의무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같은해 6월7일에는 20억의 과태료 부과 사실을 사전 통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A씨는 같은해 7월28일 귀국했다가 2022년 8월 검찰에게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공소시효 도과를 주장했다. 법 위반 시점인 2017년 7월1일부터 (공소시효) 5년이 지난 후에야 입국했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253조3항에 따라 A씨를 처벌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해당 조항은 피의자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체류할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 측은 “홍콩에서 가족과 거주하고 있었을 뿐,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 모두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1심에서는 벌금 25억원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는 12억5000만원으로 벌금이 줄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위반행위를 적발한 서울지방국세청이 2022년 6월쯤 A씨에게 문답조사를 한 사실을 바탕으로 피고인도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곧바로 국내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달리 국내로 들어오지 않은 특별한 객관적 자료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조세 포탈 등의 목적이 없었고 세무조사 이후 종합소득세를 모두 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벌금을 감액했다.
대법원 역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 벌금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