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장 출신이 마련한 간첩법(형법 98조)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다. 헌정사상 첫 사례다.
8일 야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국정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5선·전남 해남완도진도)이 이번 주 간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들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간첩법 개정을 당론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민주당 중진인 박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함에 따라 향후 간첩법 개정이 여야 합의로 처리될지 주목된다.
현행 간첩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북한은 헌법상 ‘반국가 불법단체’지만, 간첩법 적용에 있어선 국가에 준해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즉 지금의 간첩법으로는 오직 북한 간첩만을 처벌할 수 있을 뿐 그 밖에 어느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해도 처벌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를 중국 측에 넘겼다가 적발돼 지난달 구속기소된 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박 의원의 법안은 이러한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법 개정 시 간첩이 양산될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 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 법안은 기존 간첩법의 허점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인지전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국가안보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안보 전문가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했다. “있는 간첩은 잡아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에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