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5선·전남 해남완도진도)이 이번 주 간첩법(형법 98조)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 국정원장 출신이 마련한 간첩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는 첫 사례다.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들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간첩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1953년 일본의 전시 형법을 모방해 만든 법이다. 현행법으로는 오직 북한 간첩만을 처벌할 수 있을 뿐 그 밖에 어느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해도 처벌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를 중국 측에 넘겼다가 적발돼 지난달 구속기소된 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박 의원의 법안은 ‘적국’에 더해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에 가짜뉴스 등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개입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기존 간첩법을 포괄하는 ‘국가안보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안보 전문가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법안”이라고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민주당 중진이자 국정원장 출신인 박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함에 따라 향후 간첩법 개정이 여야 합의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세계일보는 지난 4일 국회에서 박 의원으로부터 간첩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행 간첩법의 문제점을 진단해달라.
―산업기술 유출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최고 기술력을 가진 어느 대학교수를 특정 국가가 데려가려 시도한 적이 있다. 우리가 이를 파악하고 해당 교수를 설득했던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외국에서 우리 대기업의 1∼6차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을 수십명 포섭해 조합하면 기술 탈취가 이뤄진다. 막대한 연봉과 아파트를 주고 자녀들을 명문대에 진학시켜주겠다고 하니 포섭될 수밖에 없다. 이걸 막으려면 선진국들처럼 기술유출 행위에도 간첩죄를 적용해야 한다.”
―법 개정 시 간첩이 양산될 수 있단 우려가 있다.
“기술은 1∼2년만 지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기술 발전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 그 기간만 막자는 것이다.”
―간첩법 개정이 번번이 무산돼왔다.
“진보적인 민주당에서 내가 간첩법 개정을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이 법안이 통과돼서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사이버전쟁 상황에서 해킹 피해를 막기 위해선 민간과 공공기관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