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서 찾은 시작… 삶, 다시 빛나다 [심층기획-2차 베이비부머 은퇴 쓰나미]

1964년∼1974년생 올부터 은퇴 시작
전체 인구의 18.6%인 954만명 달해

무기력·비생산 등 고정관념에서 탈피
‘하고 싶은 일’ 찾아 제2의 삶에 도전
정년 연장 등 계속 근로 대책 목소리

“30∼40대였다면 하기 힘들었겠지만, 50대여서 용기 낼 수 있었어요. 다 타버린 열정이 창업을 하면서 다시 살아났어요.”

 

황경화(55)씨는 2003년 24살에 입사해 29년을 다닌 회사를 2022년 10월 떠났다.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대기업에 재직 중이었기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6일 서울 관악구 아로마공방에서 만난 그는 “주변에서 다 미쳤다고 했다”며 “그런데 50살이 넘으면서부터 스스로 능력을 의심하게 됐고,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오로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황경화씨가 서울 관악구에 있는 아로마공방에서 재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황씨는 한국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하는 954만명, ‘2차 베이비부머’ 중 한 명이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1964~1974년생인 2차 베이비부머가 올해부터 법정은퇴연령(60세)에 진입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단일 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955~1963년생인 1차 베이비부머는 705만명으로 비중은 13.7%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 공급이 대규모로 줄어 경제성장률 하락도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은퇴에 따른 취업자 감소로 2024~2034년 전년 대비 연간 경제성장률이 평균 0.3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고령층 고용률이 지금보다 높아지면 노동 공급 감소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고령층의 계속근로 유무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계속근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고령층이 생각하는 일의 가치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지는 오랜 기간 몸담은 직장에서 은퇴한 뒤 재취업해 만족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5인을 만나 이들이 그린 경력 경로를 살펴봤다. 

 

5명의 주된 직업 경력은 각기 다르지만 퇴직 이후 삶을 그 어떤 삶의 단계보다 역동적인 시기로 여긴다는 점만은 같았다. ‘무기력’, ‘비생산적’ 등 고령층을 둘러싼 고정관념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우선’이었던 과거 경력보다 자발적으로 일의 의미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2022년 중소기업 생산직에 취업한 김민숙(58)씨는 한국폴리텍대학 충주캠퍼스에서 전문기술과정을 이수하며 인생 2막을 준비했다. 김씨는 “전기제어과의 유일한 홍일점이었는데 8개월 만에 자격증을 4개나 땄다”며 “딸들에게 엄마가 당당하게 해냈다는 것을 보여줘 뿌듯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5∼79세 중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층은 69.4%로 1년 새 0.9%포인트 늘었다. 고령층 열 명 중 일곱 명은 현재 취업 상태든, 일을 하지 않고 있든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는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높이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현재 60세인 근로자 정년 연장 필요성도 높아졌다. 베이비부머 5인이 부단히 쌓아 올린 경력 경로가 결코 개인적인 이야기만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