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43·스위스·은퇴)와 라파엘 나달(38·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는 2000년대 중반부터 ‘빅3’를 형성해 20여년간 세계 남자 테니스를 지배해왔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지난해 윔블던을 제외한 3개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던 조코비치마저 올해는 메이저 무관에 그치며 2002년 이후 22년 만에 ‘빅3’가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우승자 명단에서 빠졌다.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을 세계랭킹 1위인 얀니크 신네르(23·이탈리아)가 차지하면서 올 시즌 4대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우승자는 모두 2000년생들이어서 이들의 시대가 열리는 모양새다.
신네르는 9일 미국 뉴욕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끝난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테일러 프리츠(12위·미국)를 3-0(6-3 6-4 7-5)으로 물리쳤다.
이로써 올해 남자 테니스 메이저 우승 트로피는 호주오픈과 US오픈의 신네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은 세계랭킹 3위인 카를로스 알카라스(21·스페인)로 양분됐다. 신네르가 2001년생, 알카라스가 2003년생으로 남녀 테니스를 통틀어 4대 메이저 단식 우승자가 모두 2000년대생인 것은 올해 남자부가 처음이다.
그래도 조코비치는 여전히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카라스를 2-0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어 조코비치에 신네르, 알카라스까지 새로운 ‘빅3’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다만 조코비치가 불혹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신네르와 알카라스의 라이벌 구도가 남자 테니스계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곧 발표된 새로운 세계 랭킹에서는 신네르가 1위, 알카라스가 3위를 유지하며 조코비치는 4위로 내려간다. 1997년생 알렉산더 츠베레프(독일)가 4위에서 2위로 올라서게 된다.
영국 BBC 애너벨 크로프트 해설위원은 “남자 테니스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있다. 앞으로 그 둘은 엄청나게 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둘의 상대 전적은 알카라스가 5승4패로 앞서 있다.
어릴 때 스키 선수로도 활약해 하체 힘이 탄탄한 신네르는 그를 바탕으로 한 왕성한 움직임과 강한 스트로크가 강점이다. 다만 이번 US오픈을 앞두고 올해 3월 두 차례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1월 호주오픈 우승도 약물의 힘을 빌린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고의로 약물을 쓴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이 받아들여져 별도의 출전 정지 징계를 받지 않아 ‘1위 특혜’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신네르는 우승 뒤 “최근 힘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의미가 크다”며 “나는 테니스를 사랑하고, 여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