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누가 ‘계엄’을 꿈꾸나

巨野의 근거 없는 계엄 의혹 제기
특검·탄핵 겨냥한 사전 정지작업
정치 목적 위해 국민 불안감 조성
민생·의료대란 위기는 안 보이나

한쪽 눈에 번쩍거리는 안대를 하고 눈을 지그시 감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떠올랐다. 2000년대 드라마 ‘태조 왕건’에 나왔던 궁예(김영철 분)말이다. 마음을 읽는 능력 ‘관심법’(觀心法)이 있다는 그는 걸핏하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니 숨기면 죽는다”고 상대를 윽박질렀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윤석열정권이 계엄을 선포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한테 ‘관심법’이 생겼는지 “당신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 이실직고하라”는 식이다.

‘정황 증거’를 내놓기는 했다. 대통령 고교(충암고) 선배 김용현 전 경호처장의 국방부 장관 임명이 단초다. 지난달 을지훈련을 앞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암약’ ‘국가 총력전 태세 필요’ 발언도 소환됐다. 느닷없는 김용현의 국방장관 발탁이 반국가세력 소탕을 빌미로 한 계엄 체제 준비 수순이라는 얘기다. 급기야 이 대표가 1일 여야 대표회담 모두 발언에서 계엄설을 공개 언급하자 여권에서는 구체적 증거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황정미 편집인

충암고 출신 인사들의 비밀회동이 추가로 제기됐다. 충암고 출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국군방첩사령관 등이 참석한 모임에서 계엄 문제가 논의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관련 의혹을 주도하는 김민석 최고위원은 “군기문란 충암파 척결로 계엄 음모를 무산시키겠다”고 했다. 군 핵심 보직부터 영관·위관급 장교들까지 장악했던 사조직 ‘하나회’도 아니고 충암고 출신 4인이 국가비상사태를 기획·추진하는 게 가능한가.



김용현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우리 군에서 따르겠나. 저는 확실히 안 따를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군 고위 인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아무리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군대를 희화화하는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대통령실과 정부 공식 부인에도 민주당이 바통 터치하듯 계엄설을 퍼뜨리는 핵심 근거는 이거다. “윤석열정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집단이다.”

실제 김민석, 김병주 최고위원은 좌파 진영 ‘스피커’ 역할을 하는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각각 출연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세력이니 미리 막아야 한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 등이)절대 감옥 안 가겠다. 이게 핵심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시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 예를 들어 계엄 같은 걸 포함해서 미리 경고하고 대비하고 무산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저희들의 과제다.”(김민석)

요컨대 민주당 목표는 권력 핵심의 인신 구속을 겨냥한 특검·탄핵이며, 윤 대통령이 계엄령 카드로 맞설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무력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당 인사들 머릿속의 ‘계엄’은 특검·탄핵 국면을 앞둔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인 셈이다. 투표를 통한 정권교체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며, 전 세계 많은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K컬처 보유국의 거대 제1야당 목표와 핵심 과제가 그렇다면 섬뜩한 일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박한데도 탄핵 찬성 여론이 40∼50%대 머무는 건 박근혜 학습효과라고 생각한다. 법에 따라 대통령이 구속되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국민들 삶은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실 권한은 오히려 더 세졌고 국회의원 기득권은 그대로다. 국민 절반이 정치 성향 다른 사람과는 밥도 먹기 싫다고 할 정도로 내부 갈등·분열은 더 깊어졌다. 지난해 1000만 영화 ‘서울의 봄’을 본 젊은 세대는 “어떻게 문명 국가에 저런 일이 가능하냐”며 코웃음을 쳤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계엄령 운운하며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게 지금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제1야당의 민낯이다.

추석이 코앞이다. 거리 곳곳에 ‘임대 문의’를 붙인 빈 상가들이 눈에 띄고 만나는 사람마다 “경기가 안 좋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며 한숨이다. 여기에 의료대란마저 수습될 기미가 없어 “절대 아프면 안 된다”가 인사말이 됐다. 이런 것들만으로 국민들은 충분히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