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을 좌우하는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규율하는 ‘사전지정제’ 도입을 결국 철회했다. 사전지정제를 핵심으로 한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추진하려 했지만, 업계 등의 반발이 거세자 전면 백지화했다.
공정위는 9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방향’을 당정협의회에 보고했다. 애초 당정은 플랫폼법을 제정해 시장지배적 플랫폼 기업을 사전 지정하려 했다. 하지만 신산업 성장에 저해된다는 정보기술(IT)업계 스타트업들의 우려를 고려해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경쟁플랫폼 이용 금지)·최혜대우 요구(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조건 강요)’ 등 4대 반경쟁행위가 발생했을 때 사후 추정해 처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날 “독과점 플랫폼 폐해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별도법 제정을 추진한 바 있지만 지난 2월 이후 의견수렴 과정에서 효과적인 입법방식도 같이 고민했다”며 “신속한 제도 개선, 제도의 시장 안착, 수용성 그리고 기존 법체계와의 정합성·일관성 등을 고려해 공정거래법 개정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사후추정을 핵심으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플랫폼법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후추정 요건에 해당하는 지배적 플랫폼이 자사우대와 같은 위법행위를 하면 입증책임을 물어 신속하게 제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사후추정 요건으로 ‘1개 회사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 또는 ‘3개 이하 회사 시장 점유율 85% 이상이고, 사별 이용자 수 2000만명 이상’을 제시했다. 공정위는 법 위반 업체가 사후추정 요건에 부합하는지 신속히 파악하기 위해 해마다 실태조사도 하기로 했다. 다만 스타트업 등이 포함될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연 매출 4조원 미만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사후추정 요건에 부합하는 지배적 플랫폼이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 4곳이란 분석이 나온다.
만약 지배적 플랫폼이 중개 등 6개 서비스 분야에서 자사우대 등 4대 반칙행위를 한 사실이 입증되면 매출액의 8%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종전 과징금 상한은 매출액의 6%였다. 공정위는 또 제재가 마무리되기 전 반경쟁행위를 임시로 중단할 수 있는 임시중지명령도 함께 도입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