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서울 아파트값이 24주 연속 상승하고 전고점 거래가 속출한다. 경제 사정이 좋으면 다행이겠지만 지표는 다르다. 윤석열정부가 장밋빛 경제낙관론을 펼치고 있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불황’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소매판매, 투자 등 각종 경제지표는 잿빛투성이다. 고금리·고물가에 살림살이도 팍팍해졌다. 8분기 연속 가계 흑자액이 감소하면서 여윳돈마저 줄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건 우려스럽다. 들쭉날쭉한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는 지난 3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공급부족 사태를 예측했는데도 정부는 숫자만 갖고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진단했다. 40여년간 학계에서 ‘부동산’이라는 분야를 실용학문으로 끌어올린 베테랑답게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대출 규제만으로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건 행정편의적 발상”이라며 “냉온탕식 정책이 아니라 세제개편 등을 통해 일관되고 신뢰성 있는 부동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동산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8·8대책’ 효과는.
―정책 대출이 부채와 집값에 악영향을 준 것인가.
“신혼부부나 내생애첫주택대출 등 각종 이름의 정책대출이 존재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도 각종 전세자금 대출이 많다. 모두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 특정계층을 지원하면 표에 도움이 되다 보니 정부나 정치권이 그런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정책자금 대출은 다다익선이다. 금액이 많고 종류가 많을수록 좋아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실수요자 대출은 억제하면서 포퓰리즘적 정책대출을 늘리는 게 문제다.”
―정책대출 남발의 부작용은 없나.
“물론 있다.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도 중요하지만 40∼50대 역시 집 없는 사람이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자꾸 가구를 분리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집에 대한 수요가 늘어 집값을 끌어올리게 된다. 표를 의식한 정책적 판단은 집값 불안의 요인이 될 것이고 전세자금 급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주거복지 측면에서 정책대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부작용은.
“이달부터 강화된 스트레스 DSR 규제가 시행됐다. 이른바 ‘규제의 역설’이다. 규제를 앞두고 집에 대한 매수세가 몰리면서 가계대출 규모가 급증했다. 수도권에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것도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클 것이다. 이미 시장은 이자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다. 개인이나 부동산의 종류에 따라 대출금리를 정하는 건 불가피하더라도 지역별로 차등하는 건 역차별이다. 그런 사례 자체가 없다. ‘돈 있는’ 사람만 서울, 수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장벽을 치는 꼴이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부동산 양극화가 심화될 거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부동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에 있어서만큼은 양극화를 넘어 ‘초양극화’ 상태다.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 내 양극화도 심각하다. 지방 일부 지역은 ‘악성 미분양’ 물량이 많다. 2∼3년 넘은 악성 미분양은 취득세나 양도세 감면이라는 당근을 제시해 분양을 유도하는 것이 지역경제 활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주거비용이 가장 높았던 곳이 울산과 창원이다. 조선·철강산업이 있어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이 높아지면서 인구 유입이 늘었다. 국토의 균형발전이 부동산 양극화 해소에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어떻게 풀어나갈지 알려 달라.
“말 그대로 지역경제를 탄탄하게 하고 산업을 유치해 인구 유입을 늘리는 게 관건이다. 산업 기반을 갖추도록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 대기업들에게 아무리 세제혜택을 줘도 지방행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공공기관을 인위적으로 이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LH가 지방으로 이전한 후 과거 지원의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서울·인천도시공사 등 수도권으로 쏠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이 바뀌어야 하나.
“거시적으로 봤을때 과거의 부동산 정책의 틀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1가구1주택’이 과연 정의인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예전에는 정의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주택 공급의 90% 이상을 맡은 민간부문의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다주택자 규제에 막혀 있다. 이들에 대한 취득세, 양도세 완화 등을 풀어야만 공급이 원활해지고 시장 정상화, 가격 안정화가 이뤄질 것이다. 물량 공급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들다. 그 사람들이 공급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 줘야 한다. 전셋값이 오르는 건 실거주 의무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라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돈이 없으면 분양받지 말라는 것인데 과연 그게 ‘정의’냐는 것이다.”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없나.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요사이 MZ로 불리는 3040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라졌다. 30평대 아파트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왔고, 결혼해도 30평형대를 선호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적으로 가구 분화가 심화하고 있다. 항상 새집에 살아오면서 주거수준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거기에 맞는 집이 필요하다. 이제는 ‘국민평형’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급을 가로막는 건축비 인상 문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건축비가 30% 이상 올랐다고 한다. 실제로는 50% 이상 급등했을지도 모른다. 층간소음 문제 해결이나 친환경, 제로에너지, 중대재해법 등 이런 것들이 건설단가 급등을 가져온다. 근본적으로 가구 분화가 일어났고, 주거수준이 높아진 수요자들에게 이런 것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단기간에 공급도 어려운 상황에서 집값을 안정세로 유지하는 것만 해도 성공한 셈이다.”
―분양가상한제 등 각종 제도는 손 봐야 하나.
“분양가상한제의 원래 목적은 부동산 가격안정이다. 서민에게 아파트를 싸게 공급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분양을 받으면 곧바로 가격이 올라간다. 사실상 ‘로또’ 성격이 짙다. 그렇다고 이 제도를 없애면 건설사의 수익을 올려주는 꼴이 된다. 부동산은 공공재 성격이 짙다. 공익과 사익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소수만 누리는 만큼 청약 당첨으로 누리는 차익을 당첨자가 채권 매입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는 채권입찰제 도입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
―부동산 문제를 풀어나갈 해법은.
“부동산 정책은 공급의 비탄력성과 수요의 탄력성으로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과거처럼 규제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는 정책으로는 안 되는 이유다. 시장과 정책이 힘겨루기를 하면 시장이 이긴다. 시장에 순응하면서 신뢰성 있는 정책을 일관성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해 이에 걸맞은 해법을 찾아내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