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응급실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반 의사와 전공의에 이어 응급실 근무 의사와 군의관의 실명을 공개한 ‘블랙리스트’가 등장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의사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인터넷 사이트 ‘감사한 의사’에 그제 ‘응급실 부역’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여기엔 수련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 개개인의 이름과 소속, 연락처뿐 아니라 ‘이성 친구·학교폭력 피해 여부’ 등 자세한 사생활까지 적혀 있다. 글쓴이는 “리스트의 목적은 박제도 있지만,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응급실 의사들을 위축시켜 의료 위기를 더 키우겠다는 것 아닌가. 의사 윤리를 저버린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게시물과 댓글이 너무 악의적이라는 점이다. 응급 의사들에게 부역(附逆·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함)이란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응급 의사들이야말로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사의 본분을 다한 사람들이다. 환자를 버리고 떠난 의사들이 이런 표현을 쓸 자격이 있나. 이름이 적힌 의사들에겐 “불륜이 의심된다”, “모자란 행동”, “래디컬 패미니스트”, “싸이코 성향” 등 모욕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 전공의에 대해 “○○대는 처음 들었는데 덕분에 알게 됐다”고 조롱했다. 피해를 본 일부 군의관은 심각한 대인기피증까지 겪고 있다고 한다.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정부는 리스트 작성·유포에 관여한 의사들을 수사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