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보호무역정책 강화를 예고한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가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최빈국에 타격을 주고, 부유한 국가에도 생산 비용 등이 높아지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 대통령’이 되겠다고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모든 수입품에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한 자국 공급망 재건 등을 예고하며 보호무역 기조를 분명히 한 상황이다.
WTO는 9일(현지시간) 연례 포럼을 앞두고 공개한 새 보고서에서 자유 무역이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세계 불평등 해소를 위해 ‘재세계화’(re-globalization)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날 EU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존적 위험에 직면했다며 회원국들이 ‘방어적 무역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에서 “개방무역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탈탄소화, 경쟁력 관련 공동 계획 추진 시에는 공평한 글로벌 경쟁환경과 역외에서 국가 지원을 받는 (업체들과의) 경쟁을 상쇄하기 위한 방어적 무역조치가 수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철강기업 등이 영향을 받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 “(이행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역내) 에너지집약 산업에 대한 탄소배출권거래(ETS) 무상 할당의 단계적 폐지를 보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CBAM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보완될 때까지는 역내 기업 보호수단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드라기 전 총재는 EU 예산을 통한 반도체 부문 공동 지원, 신규 사업 패스트트랙 승인을 비롯해 역내 공동·민간입찰 사업 촉진을 위한 ‘EU 반도체 인증제도’ 신설도 제안했다.
한편 미 하원은 대중국 견제 전선을 더욱 확대했다. 하원은 이날 중국의 간판 바이오 기업들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해 제재하는 바이오 보안 법안(Biosecure Act)을 찬성 306표 대 반대 81표로 가결했다. 하원은 또 세계 최대 드론(무인기) 제조업체인 중국 DJI 신규 제품의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 미 국토안보부가 중국 닝더스다이(CATL)를 비롯한 중국 기업 6개사가 생산하는 배터리를 구입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도 함께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