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 덜고 노하우·연륜 살리고… 은퇴 인력 재고용, 노사 모두 ‘윈윈’ [심층기획-2차 베이비부머 은퇴 쓰나미]

〈4·끝〉 정년퇴임 인력 활용 사례 보니

“신입 고용 때보다 생산성 향상
젊은 직원 다독여 이직률 낮춰”
일손 부족 中企에 “가뭄 속 단비”

고령화에 중장년 재고용 업체 증가
숙련된 인력들 임금·소속감 ‘두 토끼’
기업은 실적 개선·조직 융화 등 효과

대기업도 은퇴자 재고용 인력 확대
교육·컨설팅 등 다년간의 경험 활용
“고용 형태·임금체계 변화 고민 필요”

“처음엔 여러 우려가 있었으나 재고용해보니 생산성 향상은 물론 사내 분위기 개선 등 장점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몇 해 전부터 정년퇴임을 한 직원들을 재고용해 온 부곡스텐레스의 이정상(65) 실장이 11일 세계일보에 전한 말이다.



41년의 업력을 가진 부곡스텐레스는 대구에 있는 스테인리스 파이프 제조기업이다. 오랜 기간 사업만큼 기술력이나 매출이 튼실한 기업이지만 ‘지방’에 있다는 점, ‘3D’(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업종 성격을 일부 가진 제조업이라는 특성 탓에 인력난을 상수로 안고 경영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이에 몇 해 전부터 회사는 법정 은퇴연령(60세)에 들어선 직원들을 계속 고용하는 한편 외부 은퇴 인력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기업은 숙련된 인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고 직원들은 임금과 더불어 소속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현재 총원 27명 중 3명이 중장년 인력으로 숙련된 분들인데 신입 직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적어도 두 배의 생산성이 나온다”며 “특히 연륜이 있고 여유가 있는 분들이 젊은 직원들에게 일을 알려주고 다독여주니까 이직률도 낮아져 회사로서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심각한 속도로 산업현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저출산·고령화에 60세 이상 은퇴 인력을 재고용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외면으로 일손이 부족한 중소 제조업체나 지방 소재 기업에는 이들 채용이 특히나 ‘가뭄 속 단비’와 같다.

 

최근에는 대기업과 은행권에서도 고령인력의 노하우와 연륜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업무 교육 혹은 조언자의 역할로 재고용을 조금씩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 은퇴가 본격 예고된 만큼 중고령자 대상 역량 개발 프로그램 마련과 정년 이후 고용형태의 다양화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산업·노동계에 따르면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고령자 계속 고용에 적극적이다. 중소 제조기업은 젊은 층의 기피 탓에 인력 부족률이 전체 산업에서 가장 높다.

 

대구의 침구제조 업체인 한빛침장도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취업규칙까지 변경해 정년연장 재고용 제도를 도입했다. ‘촉탁계약직’으로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식으로 노사가 모두가 원하는 한 계속해서 일할 수 있게 한 것.

 

인력 부족에 시달리다 못해 반신반의하며 도입했는데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현재 26명의 직원 중 50대 이상 직원이 70%에 달하며 최고령 직원은 77세 여성이다.

 

송상열(64) 한빛침장 상무는 “요새는 나이가 60∼70대라도 체력은 관리하기 나름”이라며 “고령 직원들이 경력이 다 30년 이상 있는 분들이라 젊은 친구들보다 일도 빠르고 부지런하셔서 회사 입장에서는 건강만 뒷받침된다면 계속해서 일하시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참여 업체의 채용공고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송 상무의 말처럼 근로자의 계속 고용 의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2 고령화연구패널 기초분석보고서가 45세 이상부터 80세 이상 8447명 표본 중 일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은퇴계획 연령이 현재 취업자의 경우 평균 71.8세에 달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은퇴하지 않겠다’라고 응답한 비중도 전체적으로 38.8%를 차지했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만큼은 아니지만, 정년 후 재고용 제도 인력을 차츰 늘려가고 있다. 주로 교육, 컨설팅 등 다년간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이들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부터 HE(Honored Engineer)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엔지니어 중 기술력이 우수한 인원을 선발한 뒤 그중 정년 이후까지 활동할 인재인 HE를 선발해 중장기 프로젝트 지휘와 더불어 자신의 역량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조언자 역할을 맡긴다.

 

삼성전자는 역량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직원들에 한해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시니어 트랙 제도를 2022년 도입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전문성과 실적 등을 바탕으로 정년 이후에도 현장관리 및 기술교육원 교수 등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재고용 제도를 마련했다. 현재 이런 식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 약 20명이다.

 

장혜준(68) 현대엘리베이터 미래인재 아카데미 전문 교수는 1985년 입사해 기술자로 일하다 정년 이듬해인 2014년 교수로 ‘변신’했다. 회사에 기술교육원이 설립되면서 초대 교수로 참여한 이후 올해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20년 넘게 현장에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교육원에서 이론 및 실기 입문 강의와 교재 개발, 교육 과정 개발, 교육 시설물 기획과 관리 등을 맡고 있다. 장 교수는 “기술교육원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육의 업무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적인 희망퇴직 등을 통해 정년보다 일찍 퇴직하는 이들이 많은 은행권에서도 퇴직 뒤 재고용 바람이 불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들 퇴직자가 숙련된 업무 능력과 노하우, 검증된 조직 적응력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영업점에서 대출 서류 등에 대한 자체점검 감사를 맡기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우리은행은 퇴직 1년 경과 후 재취업 신청자를 대상으로 재채용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 노인이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앞으로다. 이런 더딘 속도의 계속 고용 확대로는 1000만명에 육박하는 제2차 베이비부머 은퇴 쓰나미 등이 불러올 산업·근로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고학력의 양호한 건강조건을 갖추고 있는 인력이 은퇴연령에 근접함에 따라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용호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높은 학력 수준과 전문지식을 갖췄고 건강한 이들이 많다”며 “이런 이들에 대해서는 정년과 상관없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 경제성장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 교수는 “다만 고용형태나 임금체계는 기존의 체계와는 다른 트랙으로 가야만 한다”며 “기업의 부담은 줄여주면서 은퇴자는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 상생할 수 있도록 임금피크제, 근무시간 단축 등 다양한 형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