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포기에 2만원이요.”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2일 오후 명절 음식을 준비하러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김모(70·여)씨가 배추 가격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뭔 배추 한 포기가 2만원씩이나 해’라고 혼잣말을 읊조리며 서성이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예년 같으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려야 할 전통시장은 대목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시장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고금리 장기화와 역대급 폭염으로 인한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한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긴 황금연휴까지 겹치며 손님이 줄면서 상인들은 “역대 최악의 경기”라며 울상을 지었다.
서울 종로구에서 사는 주부 박모(64)씨는 “매년 명절 때 친척들 모이면 겉절이랑 배추전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메뉴를 바꿔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20만원까지 치솟았던 사과 한 상자의 가격은 현재 5만∼7만원까지 떨어져 제자리를 찾았지만 채소류와 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며 명절 고물가를 이끌고 있다. 지난달 폭염과 열대야로 작황이 부진한데 추석을 앞두고 수요가 증가한 탓이다. 1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날 배추 중도매가격은 3만3560원으로 1년 전보다 102.2% 올랐다. 시금치(4㎏·9만8340원)와 무(20㎏·2만8480원)도 각각 82%, 63% 상승했다.
수산 품목도 수온 상승 영향으로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올랐다. 참조기(냉동) 1마리의 소매가격은 151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올랐다. 특히 오징어의 경우, 하루 조업량이 30% 줄어 시세가 올랐다. 오징어(냉동·중) 중도매가격은 1㎏에 1만3600원으로 1년 전, 평년과 비교해 각각 25.6%, 26.5% 상승했다.
여기에 세대가 바뀌며 명절을 단순한 ‘휴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상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20년째 한자리에서 한과를 팔고 있다는 이상미(70·여)씨는 “매년 차례를 위한 한과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 올해는 기존에 10종류였던 차례용 한과를 5개로 줄였다. 올해는 특히 5일 황금연휴라 더 손님이 없는 것 같다”며 “그나마 명절 선물용 한과 세트가 있어서 명절 같지 이마저도 없었으면 입에 풀칠도 못 할 뻔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