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포기 2만원… 손님도 상인도 ‘울상’

추석 앞둔 전통시장 가보니

역대급 폭염에 농산물 가격 급등
배추 평소 4000원서 5배로 올라
참조기·오징어, 15~26% 가격 상승
“물가 내렸다더니 역대 최악 경기”

명절 분위기도 달라져 특수 실종
“앞으로 입에 풀칠도 못할 판” 한숨

“배추 한 포기에 2만원이요.”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2일 오후 명절 음식을 준비하러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김모(70·여)씨가 배추 가격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뭔 배추 한 포기가 2만원씩이나 해’라고 혼잣말을 읊조리며 서성이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12일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비교적 한산한 경동시장 모습. 채명준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예년 같으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려야 할 전통시장은 대목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시장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고금리 장기화와 역대급 폭염으로 인한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한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긴 황금연휴까지 겹치며 손님이 줄면서 상인들은 “역대 최악의 경기”라며 울상을 지었다.



정부가 추석 성수품 가격에 대해 전년보다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시민들과 상인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정부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까지 둔화되며 3년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뒤 “물가안정 목표에 도달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경동시장에서 30년째 채소를 팔고 있다는 장모(60)씨는 “평소 포기당 4000원 정도였던 배추 가격이 5배 이상 뛴 셈이니 손님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정부에서 배추 가격을 8000원이라고 발표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최근 역대급 폭염에 고랭지 농사도 망했고 정부 비축 배추까지 동나니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며 “지금 판매 중인 배추도 상태가 예년에 비해 썩 좋지 않아 폐기되는 것까지 고려하면 우리도 정말 죽을 맛”이라고 가게 한쪽 구석에 가득 쌓인 채 폐기된 배추를 가리켰다.

 

서울 종로구에서 사는 주부 박모(64)씨는 “매년 명절 때 친척들 모이면 겉절이랑 배추전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메뉴를 바꿔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20만원까지 치솟았던 사과 한 상자의 가격은 현재 5만∼7만원까지 떨어져 제자리를 찾았지만 채소류와 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며 명절 고물가를 이끌고 있다. 지난달 폭염과 열대야로 작황이 부진한데 추석을 앞두고 수요가 증가한 탓이다. 1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날 배추 중도매가격은 3만3560원으로 1년 전보다 102.2% 올랐다. 시금치(4㎏·9만8340원)와 무(20㎏·2만8480원)도 각각 82%, 63% 상승했다.

수산 품목도 수온 상승 영향으로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올랐다. 참조기(냉동) 1마리의 소매가격은 151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올랐다. 특히 오징어의 경우, 하루 조업량이 30% 줄어 시세가 올랐다. 오징어(냉동·중) 중도매가격은 1㎏에 1만3600원으로 1년 전, 평년과 비교해 각각 25.6%, 26.5% 상승했다.

여기에 세대가 바뀌며 명절을 단순한 ‘휴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상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20년째 한자리에서 한과를 팔고 있다는 이상미(70·여)씨는 “매년 차례를 위한 한과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 올해는 기존에 10종류였던 차례용 한과를 5개로 줄였다. 올해는 특히 5일 황금연휴라 더 손님이 없는 것 같다”며 “그나마 명절 선물용 한과 세트가 있어서 명절 같지 이마저도 없었으면 입에 풀칠도 못 할 뻔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