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측정 불가할 때까지 ‘한라산’에 숨어있던 뺑소니범…징역 5년

사고 약 14시간여 후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 '0%', 음주운전 혐의 적용 못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산간도로에서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 침범 사고를 잇따라 내고 도주한 4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고 현장 모습. 뉴시스

 

제주지법 형사1단독(여경은 부장판사)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및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A(41) 씨에게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 7월 10일 오후 6시 39분쯤 한라산 성판악 탐방안내소 인근 516도로에서 서귀포 방면으로 지인 소유 승용차량을 몰다가 여러 차량을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중앙선을 침범해 승용차 3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도주하다 또다시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간선버스를 들이받은 것이다.

 

마주 오던 모닝과 SM6 등 2대를 들이받는 첫 사고가 나자 A 씨는 잠시 멈췄다. 이미 뒤따르던 아이오닉 차량이 SM6 차량을 추돌하는 2차사고도 발생했다. 

 

차량 앞 범퍼가 파손된 차를 몰고 달아나던 A 씨는 또다시 중앙선을 침범해 간선버스와 충돌했다. 버스에는 12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버스 승객 등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한때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졌다.

 

두 번째 사고를 내고 나서야 차에서 내린 A 씨는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경찰 등이 출동하기 전 차량을 놔둔 채 달아났다. 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졌음에도 A 씨는 한라산 국립공원 내 숲으로 도주했다.

 

이튿날 출근하던 사고 목격자가 한라생태숲 인근 갓길을 걷고 있는 A 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현장에서 약 13km 떨어진 제주시 양지공원 인근에서 A 씨는 긴급 체포됐다. 사고 약 13시간 40분만인 11일 오전 8시 20분쯤 체포됐다.

 

그는 검거 당시 '술을 마시지 않았고 사고에 대한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풀숲에 누워 있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다 뒤늦게 '사고 당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소주 4~5잔을 마신 것 같다'고 진술을 번복, 음주 사실을 시인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해당 식당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A 씨가 여러 차례 술을 마신 영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음주 수치가 검출되지 않아 음주운전 혐의는 끝내 적용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약 13시간 40분 만에 A씨를 긴급체포해 진행한 음주 측정에서도 혈중알코올농도가 0%로 나왔기 때문이다. 

 

곧장 채혈도 진행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지만 끝내 음주 수치는 검출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결국 음주 운전 혐의는 배제하고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A 씨는 2018년 차량 절도 범행으로 자동차운전면허도 취소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음주 무면허 사고는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A 씨는 교통사고를 잇달아 낸 뒤 도주했다. 음주측정을 할 수 없게 되자 한라산에 숨어 있다가 붙잡혔다.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음주운전 관련 전력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한편, 현행법상 음주 운전 혐의를 적용하려면 반드시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해야 한다.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위드마크 기법도 있지만, 이때도 최초 수치가 있어야 역추산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