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고 기름진 명절 음식 산도 좋은 화이트·스파클링 와인과 찰떡궁합/이탈리아 와인과 한식의 페어링 비바 일비노 2024 한달동안 서울·부산서 열려/레스토랑·와인바 38개 수입사 28개 참여 600여종 이탈리아 와인 선보여
떡볶이, 순대, 만두, 삼겹살, 불고기, 파전. 아마도 김치찌개와 더불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소울 푸드’일 겁니다. 방금 불판에서 구어 내 기름기 졸졸 흐르는 고소한 삼겹살은 어떤 와인과 어울릴까요. 와인을 잘 몰라도 ‘고기=레드 와인’라는 공식은 쉽게 떠올릴 수 있으니 아마 대부분 레드 와인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느끼한 삼겹살은 탄닌이 풍부한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이나 청량감 넘치는 버블감을 즐길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이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생기발랄한 산도와 버블이 삼겹살의 느끼한 기름기를 잘 잡아주고 입안을 말끔하게 헹구기 때문에 계속 삼겹살에 손이 가게 만든답니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명절 대표 음식인 생선전, 육전, 동그랑땡도 레드 와인보다는 스파클링 와인이 제격입니다. 명절 음식을 포함해 한식과 궁합이 좋은 와인을 꼽으라면 역시 이탈리아 와인입니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나고 이탈리아 전역이 와인 산지일 정도로 다양한 와인을 페어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나 볼까요. 비바 일 비노(Viva il Vino)!
◆이탈리아 와인 산업
고대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한 이탈리아에서 와인 산업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탈리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이탈리아 와인 산업 규모는 무려 313억유로에 달하는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입니다. 와이너리 등 기업은 53만개, 종사자는 87만명에 달합니다. 2000억유로에 달하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전통 수출품목(의류, 식품, 가구, 자동화 등)에서도 와인이 1위를 차지했을 정도랍니다. 2022년엔 와인이 79억유로의 순수출액을 기록해 패션, 기계 등 다른 이탈리아 수출 강자들을 제치고 무역 수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만큼 이탈리아는 ‘와인에 진심’인 셈입니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 이후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동안 한국에 수입되는 이탈리아 와인은 2900만달러에서 8700만달러로 거의 3배 가까이 증가했을 정도로 한국 시장에서 이탈리아 와인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성입니다. 그리스와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품종을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인을 빚는 포도품종은 프랑스가 300종, 스페인이 350종 정도인데 이탈리아는 토착품종만 700종이고 모두 2000종에 달합니다. 품종만큼 이탈리아 전역이 유명한 와인 산지여서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됩니다.
북부 피에몬테 지방에서 네비올로 품종으로 빚는 ‘와인의 왕’ 바롤로와 ‘와인의 여왕’ 바르바레스코. 북부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지방에서 만나는 샴페인을 능가하는 프란치아코르타와 프로세코. 베로나 인근에서 말린 포도로 빚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와인’ 아마로네와 가르가네가로 빚은 소아베 마을의 화이트 와인. 알프스와 맞닿은 최북단 산지 알토 아디제를 대표하는 장미향 아로마가 뛰어난 게뷔르츠트라미너.
부드러운 능선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림같은 풍경을 선사하는 중부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 품종 삼총사 키안티 클라시코·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토스카나의 해안가 볼게리에서 탄생한 세계 최고의 와인 슈퍼 투스칸. 영화 ‘대부’의 배경 시칠리아에서 지금도 불을 뿜는 활화산 에트나 화산재를 먹고 자라는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와 네로 다볼라. 이탈리아 지도의 구두 뒷축, 풀리아의 뜨거운 태양을 머금은 강렬한 ‘팜므파탈 와인’ 프리미티보까지. 나라 전체가 포도밭인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 이탈리아의 와인의 매력은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습니다. 매년 4월에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한 자리에 출품되는 세계 3대 와인 엑스포 빈이탈리(Vinitaly)가 베로나에서 열리며 전세계 바이어들이 대거 몰려들어 흥겨운 와인 축제가 펼쳐집니다.
◆‘비바 일 비노’ 한달동안 서울·부산서 열려
이런 다양한 이탈리아 와인을 즐기는 ‘비바 일 비노 2024’ 행사가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주한 이탈리아 무역공사 주최로 9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한달동안 서울과 부산의 레스토랑, 와인바, 와인숍 38곳에서 펼쳐집니다. 지난해에는 서울의 레스토랑과 와인바 22개 업체가 참여했지만 올해는 부산까지 확대됐고 수입사도 28곳이 대거 참여합니다. 레스토랑과 와인바는 코리안다이닝&와인바, 소울다이닝, 포리스트 키친, 레스토랑 주은, 단상, 조각보 치킨, 수티문, 다이닝 오은, 플럭스, 미쉬매쉬, 소공간 다이닝, 르 도헤, 탈스티, 캄포, 온 6.5, OPNNG, 레 부르주아, 오일장, 까사 델 비노, 퍼플독 송파점, 누를, 사브서울, 무드서울, 모와, 떼레노서울, 보르고한남, 라스칼라, 데블스도어, 와인나라 입니다.
수입사는 아라브릿지, 아베크 와인, 비엘비 코리아, 칸노나우, 까브드뱅, 콜드스프링, 동원와인플러스, 주주코리아, 금양인터내셔널, 코리안와인즈, 롯데칠성, 몬도델비노, 모노드림, 오비노, PNS 와인, 솔트와인, 신세계 L&B, 트렌드인터내셔널, 뱅가드와인머천트, 비노폴리오, 비노에이치, 비노비노, 와인브라더스, 와인덕, 루뱅코리아, 와이넬, 윈비노입니다.
국내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이 한식, 컨템포러리,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와인바, 와인숍 38곳을 선정했습니다. 기존 업장에서 보유한 500종 외에 이번에 새로 수입사가 신청한 와인 240종중 음식 페어링 테이스팅을 통해 100종을 엄선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와인 앰배서더인 이인순 와인랩 대표가 참여 업장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이탈리아 와인 교육을 진행해 고객에게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와인 정보도 제공됩니다.
에밀리아 가토(Emilia Gatto)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10일 열린 킥오프 행사에서 “이탈리아에는 소규모의 와이너리들도 많아서 소량 생산으로 고품질의 와인들을 선보이고 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한식과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냅니다.
페르디난도 구엘리(Ferdinando Gueli) 주한 이탈리아 무역공사 관장은 “독특한 품종과 뛰어난 품질 덕분에 전 세계 와인 시장을 이끄는 이탈리아 와인은 400개 이상의 DOC 및 DOCG 인증 와인은 물론 2000개의 포도 품종, 20개 지역 전체에 걸쳐 700개의 토착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며 “이처럼 한국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의 방대한 페어링 옵션을 제공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찾기 어렵다”고 강조합니다.
◆명절 생선전·육전 시칠리아 그릴로와 찰떡궁합
실제 이탈리아 와인은 산도와 과일향이 좋아 가장 음식 친화적인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명절에 많이 먹는 생선전, 육전, 동그랑땡도 스파클링 와인, 화이트 와인과 페어링하면 놀라운 맛의 신세계가 열립니다. 특히 산도는 물론 미네랄이 돋보이는 시칠리아 대표 토착 품종 그릴로(Grillo)를 추천합니다. 그릴로는 요즘 시칠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이트 품종입니다. 초록빛이 감도는 옐로우 컬러를 띠고 감귤류의 시트러스에서 잘 익은 복숭아, 모과, 배 등 핵과일, 패션 푸르트 등 열대과일까지 풍성한 과일 아로마를 지녔습니다. 커다랗고 하얀 꽃의 이미지도 떠오릅니다. 타임 등 허브향도 느껴지고 신선한 바닷바람을 머금은 듯한 미네랄이 돋보이며 산도 밸런스가 뛰어납니다. 오크 배럴에서 숙성하면 샤도네이 같은 풀바디 와인으로도 만들어집니다.
비바 일 비노 2024에 참여하는 와인중 쿠스마노 샤마리스 그릴로(Cusumano Shamaris Grillo)가 그릴로 100%로 만든 와인입니다. 신선한 오렌지 꽃으로 시작해 잘 익은 사과와 복숭아향이 이어지고 마치 바닷가에서 서있는 듯 짭조름한 미네랄이 미각세포를 하나하나 일깨웁니다. 생기발랄한 산도가 뒤에 잘 받치고 있어 밸런스도 아주 뛰어납니다. 뛰어난 미네랄 덕분에 겨울철 뽀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굴전과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네요. 3개월동안 효모와 함께 앙금숙성(Surlees)해 복합미도 잘 느껴집니다. 이탈리아 국영 항공사 ITA Airways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 서비스 와인으로 선정됐습니다. 2021 빈티지는 제임스 서클링 92점, 와인 앤수지애스트 90점을 받았습니다. 샤마리스는 해가 질때 바다 표면에 반사되는 반짝이는 ‘윤슬’을 뜻합니다. 포도밭이 바다와 가깝고 해발고도 400m 언덕에 있어 포도가 짭조름한 미네랄과 좋은 산도를 잔뜩 움켜지게 됩니다.
쿠수마노 사가나(Sagana)는 네로 다볼라 100% 와인으로 잘 만든 네로 다볼라 와인의 전형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눈 감고 마시면 프랑스 부르고뉴의 마을단위 피노누아 같이도 하고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 그랑크뤼 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아한 향수향이 폭발합니다. 블랙체리, 블랙 베리의 진한 과실 향으로 시작해 은은한 장미꽃향이 더해지고 미네럴향과 향신료향 등 화려하고 복합미가 넘치는 향들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부드럽게 목젖을 타고 흐르는 탄닌의 질감도 매력적입니다. 사가나는 ’매우 소중한’, ‘보물’이라는 뜻인데 정말 보물 같은 와인입니다.
쿠수마노 노아(Noa)는 네로 다볼라 40%, 메를로 30%, 카베르네 소비뇽 30%를 섞은 와인으로 시칠리아 토착품종과 국제품종의 절묘한 결합을 잘 보여줍니다. 볼게리 수퍼 투스칸을 닮은 ‘수퍼 시칠리아’ 와인으로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로 시작돼 온도가 오르면 밀크 초콜릿, 오렌지 껍질향, 감초 등 향신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집니다.
2001년 알베르토 쿠수마노(Alberto Cusumano)와 디에고 쿠수마노(Diego Cusumano) 형제가 만든 쿠수마노 와이너리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5개 싱글빈야드 포도밭 500ha에서 와인을 생산합니다. 오로지 자가 소유 포도밭에서만 와인을 만듭니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꼬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서 2021년 올해 최고의 와인메이커로 선정됐고 미국에서는 시칠리아 브랜드 중 1위를 달립니다. 시칠리아 와인 양조의 모던화를 이끈 혁명적인 와이너리로 평가 받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최고 권위 와인 매체인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의 최고 평점인 트레 비끼에리(Tre Bicchieri)도 여러차례 수상했습니다. 쿠수마노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 최대 유통그룹 에티카 와인스(Ethica Wines)를 통해 트렌드인터내셔날이 수입합니다.
◆이탈리아 와인, 한식 밥상과 만나다
파의 강한 허브 뉘앙스가 강조되는 파전은 가르가네가 품종으로 만든 소아베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립니다. 가르가네가는 미네랄과 꽃향기가 풍부한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아카시아나 인동초와도 비슷하면서도 좀 더 식물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데 카모마일 같은 허브향과 말린 국화향, 백후추향이 도드라집니다. 불고기는 보통 사과, 배를 많이 넣어 과일향이 풍부하기 때문에 산지오베제, 프리미티보 등 과일향이 뛰어난 레드 와인과 페어링이 잘 됩니다.
즉석에 만드는 김밥은 돌돌 만 뒤 마지막에 참기름을 슥슥 발라 마무리합니다. 참기름에 버무려지는 밥알은 고소한 향기가 많이 나기 때문에 오크통에서 숙성해 구운 아몬드와 바닐라향이 나는 화이트 와인과 좋은 궁합을 보입니다. 삼겹살은 흔히 레드와인을 선택하기 쉽지만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레드 와인의 타닌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대신 산도가 좋은 풀바디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이면 삼겹살의 고소한 맛을 살리면서도 느끼함을 잘 잡아줍니다. 대신 스파클링 와인은 당도가 높지 않은 브뤼(Brut) 이하를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두도 빼놓을 수 없네요. 고기만두는 허브 뉘앙스의 산뜻한 화이트 와인과 페어링이 좋고 군만두는 프로세코 등 오크 숙성하지 않은 산뜻한 스파클링 와인이 잘 어울립니다. 킥오프 이벤트에서는 떡갈비쌈밥과 피에몬테의 레드 품종 바르베라, 닭강정과 시칠리아 레드 품종 프라팟토와 풀리아의 프리미티보, 전 음식과 피에몬테의 소비뇽블랑, 약과와 모스카토 다스티의 페어링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