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3일 대법원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상대 배우 반민정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배우 조덕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4년간의 법정 공방을 이어오는 동안 '여배우 A'로 불렸던 반민정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실명을 공개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제 사건 판결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여버린 영화계 내 성폭력을 쓸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용기 내 섰다"며 울분을 토했다.
◇ "연기에 충실했다" vs "합의되지 않은 연기"
사건은 2015년 4월 장훈 감독의 저예산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장에서 불거졌다. 조덕제는 아내 반민정을 강간하는 남편 배역을 연기했다.
반민정은 상호 간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덕제가 자신의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며 조덕제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신고했다.
반면 조덕제는 합의 유무에 대해 '감독'과의 소통 과정을 언급했다. 여배우에게 어느 정도의 합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받은 시나리오와 콘티에는 여배우의 바지를 찢는 장면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장에는 배우들과 가까운 거리에 3명의 스태프가 있었는데 스태프의 눈을 피해 가며 여배우를 추행했겠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 감독, 여배우 없는 자리서 "마음대로 해라, 강간하는 것처럼"
한 매체가 장훈 감독의 연기지도가 담긴 메이킹필름 일부를 공개하면서 한때 여론은 조덕제의 편에 서기도 했다. 해당 영상에서 장훈이 조덕제에게 "그냥 옷을 확 찢어버리는 거야"라며 "(여배우가) 바지에서부터 몸을 감출 거 아니냐. 그럼 그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해라. 미친놈처럼. 강간당하는 기분으로 만들어주셔야 한다"고 지도했기 때문이다.
장훈이 해당 발언을 했던 현장에는 반민정이 없었고, 두 배우가 연기를 하는 영상에서는 배우들의 상반신만 찍혀 있어 하체 추행 여부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으나, 감독의 디렉션만으로 여론은 급선회했고 피해자 반민정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
이에 반민정은 △강제추행이 발생한 영화는 '15세 관람가' 영화이고, 성추행이 일어났던 13번 장면은 기본적으로 '폭행신'이며 '에로신'이 아닌 점 △조덕제의 피해자에 대한 사과 및 영화하차 의사표시 △감독의 연기 지시에만 따랐을 뿐 강제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조덕제의 주장과 달리 13번 장면부터 조덕제가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반박에 나섰다.
또 메이킹 필름을 공개한 매체가 영상을 편집, 왜곡했다며 약 5760개 프레임 중 가해자에게 유리해 보일 수 있는 극히 일부분인 16개의 프레임만 선택해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성추행 혐의에 대한 모든 판결이 끝난 후 반민정은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를 통해 추행당하는 장면 일부를 직접 공개하고 "'시늉만 해라'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조덕제가) 전혀 따르지 않았고 영상을 보면 저는 제 신체 부위를 가리고 카메라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다. 옷이 다 찢긴 상태에서 제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이고 제가 등만 보이면서 계속 문 쪽으로 도망간다. 몸이 위축돼서 그냥 방어하고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 '무죄→유죄' 뒤집힌 판결
1심은 조덕제에 대해 "연기 도중 피해자 신체를 만진 행위는 위법성이 없다"며 강제추행치상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한 행위 역시 허위 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조덕제의 무고죄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무죄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사전 합의가 없었다" 등의 이유로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또 무고 혐의에 대해서도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무고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조 씨는 연기자로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하는 과정에서 순간적, 우발적으로 흥분해 강제추행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고 계획이나 의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을 설명했다.
◇ 기자 된 이재포와 가짜뉴스 유포도
반민정과의 재판 과정 중 조덕제는 개그맨 출신 기자 이재포와 모의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며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이재포는 2016년 7월부터 2개월간 자기 매니저 김 모 씨를 기자로 둔갑시켜 반민정에 대한 허위기사를 작성했다. 이재포와 김 씨는 반민정이 한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고 식당 주인에게 돈을 받았다면서 의료사고를 빌미로 한 합의금까지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재포는 1심에서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는데,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4개월 더 늘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었으나, 2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성범죄 재판을 받는 지인(조덕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피해자의 과거 행적을 조사해 허위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기사들이 성범죄 재판에 참고 자료로 제출되면서 피해자는 본인 진술이 의심받는 상황까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후 성추행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일 때는 물론 유죄가 확정된 이후에도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글을 인터넷에 다수 게시한 혐의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진 조덕제에게도 역시 징역 11개월의 철퇴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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