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콘서트로 불똥 튄 상암 잔디…해법은? [체크리스트]

팔레스타인전 경기 후 "잔디 아쉬워" 한 목소리…품종 문제?
무더위 속 잦은 경기장 이용도 문제…해외 일주일에 한 번 '휴식'

"콘서트 대관 취소해 주세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관리 주체인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에 민원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지난 5일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예선전 직후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이 경기장 잔디 불량을 지적한 것의 여파인데요. 대한축구협회는 상암 잔디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10월 이라크전 홈 경기장의 변경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었습니다. 일부 축구 팬들이 오는 21~22일 열리는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 콘서트 취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인데요. 손상된 잔디를 복구해 홈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문화행사 등 외부 대관은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서울시설공단의 주 수입원이 이런 문화행사 대관인 것을 고려하면 무작정 대관을 최소화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습니다.

 

◇ 팔레스타인전 경기 후 "잔디 아쉬워" 한 목소리…품종 문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팔레스타인 간 경기는 0대 0 무승부로 마무리됐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나온 양측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디 상태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공을 다룰 때 어려움이 있다"고 했고 팔레스타인 마크람 다부브 감독도 "경기장 잔디 상태가 100%가 아니다"라며 "이 잔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잔디 상태의 악화는 10월 열릴 이라크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상암 경기장의 잔디 상태를 보고받은 뒤 대한축구협회(KFA)에 잔디 개선 방안을 제출하거나 다른 경기장 후보를 제시하라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경기장은 늦어도 25일 내로 확정될 예정입니다.

 

서울시설공단은 관리 부실 지적에 대해 잔디 표면 온도를 낮추는 관수 작업을 실시하거나 송풍기를 24시간 켜 놓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그럼에도 선수, 전문가들로부터 잔디 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각에선 더위에 약한 경기장 잔디 품종을 문제 삼습니다.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경기장에선 켄터키 블루그래스, 페레니얼 라이그라스 등 한지형 잔디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이들 잔디는 13~20도의 다소 서늘한 날씨에서 잘 자라며, 25도 이상의 더위엔 취약한 특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한여름이라도 그늘이나 저녁엔 다소 서늘한 유럽과 달리, 밤낮없는 폭염이 이어지는 한국의 기후적 특성과는 다소 맞지 않는 잔디인 셈입니다. 기후적 특성만 고려하면 '한국형 잔디'를 심으면 안 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잔디가 푸르러지는 시기와 한국 축구 시즌이 크게 겹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 무더위 속 잦은 경기장 이용도 문제…해외 일주일에 한 번 '휴식'

 

안 그래도 더위 때문에 컨디션 난조를 겪는 잔디에 회복할 틈을 주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유럽의 유명 구장의 경우 잔디의 회복을 돕는 선선한 기후임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만 경기용으로 구장을 이용하는 등 잔디를 쉬게 해줍니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가 없을 땐 콘서트 대관 등으로 잔디를 혹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문화행사 대관의 경우 무대장비, 다중 인파 등으로 인해 잔디에 가해지는 손상이 일반 경기보다 크기도 합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좌석 수만 해도 6만 6704석을 자랑하는 거대 경기장입니다. 최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계산 방식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무대를 추가 설치하거나 그라운드 석(잔디석)까지 포함하면 8만~10만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4월엔 아이돌 그룹 세븐틴, 지난 5월엔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이곳에서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21~22일엔 가수 아이유의 콘서트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들은 공연 때 그라운드 객석(잔디석)을 판매하지 않거나 잔디 관리에 신경 쓰는 등 축구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우려는 여전합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경기장 잔디 분야 시설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최준수 단국대 환경원예조경학부 명예교수는 "선수 22명이 3000평가량의 잔디를 고루 뛰어다니는 것과 몇천, 몇만 명이 잔디를 밟고 서 있는 것을 비교했을 때 후자의 손상이 더 심하다"며 "봄, 가을엔 일주일에 한 번, 여름처럼 취약한 경우엔 2주에 한 번 정도만 이용하며 잔디에 회복 시간을 주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관리주체인 서울시설공단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잔디 관리 등 정비에 투자하기 위해선 수익성을 간과하기 어려운데, 문화예술 행사의 경우 경기장 사용료보다 단가가 높아 이익이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공단 측은 수익성과 무관하게 축구 경기를 대관 1순위로 하고 있으며 잔여 일정에만 기타 행사를 대관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잔디 밀도 회복을 위한 종자를 파종하고 통기 작업 등 생육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축구 경기력 향상을 위해 경기 일정 등은 유관기관과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