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여소야대 정국 아래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 가운데 2025년에 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파가 다른 지금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자는 취지의 주장으로, 자칫 대통령 하야와 조기 대선 실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어 주목된다.
14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지도자 마린 르펜(56)은 이날 RN 당원들에게 “위대한 프랑스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작동할 수 없다”며 “이런 형태의 정부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원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가 가능한 시점까지) 10개월이 남았다”며 “그 10개월이 지나면 새로운 의회 선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헌법상 하원의원 임기는 5년이다. 다만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하원을 해산한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대거 약진하자 2022년 총선 결과로 구성된 하원을 전격 해산했다. 이에 따라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마크롱의 중도 집권당이 패배하며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문제는 하원 해산은 1년에 한 번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올해 총선이 7월에 치러진 만큼 다음에도 조기 총선이 이뤄지려면 내년 7월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프랑스 하원은 전체 577석 중에서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193석으로 원내 1당이다. 2위는 마크롱의 중도 집권당으로 166석을 갖고 있다. 르펜의 RN이 142석으로 3당, 우파 공화당이 47석으로 4당에 해당한다. NFP가 다수당이긴 하나 그를 포함해 어느 단일 세력도 과반(289석 이상)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 때문에 프랑스는 총선 이후 2개월 동안 총리를 임명하지 못하는 공전을 겪었다. 마크롱은 최근에야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73)를 총리에 임명했다. 우파와 중도 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일부 중도 좌파 세력까지 끌어들인 연립정부 구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에서 총리와 그가 이끄는 정부는 하원의 신임 대상이다. 하원의원 과반이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하면 총리는 물러나야 하고 정부는 무너지고 만다.
바르니에의 등장에 1당인 NFP는 “마크롱이 총선 민심을 무시하고 원내 4당에 속한 인사를 총리로 지명했다”며 대통령 탄핵소추도 불사할 태세다. 르펜의 주장은 이처럼 정국이 파행을 빚는 것을 막으려면 하원을 조기에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치러 원내에 확고한 과반 다수당이 존재하는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 불어닥친 극우 열풍에 힘입어 RN이 원내 1당이자 과반 다수로 부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조기 총선과 때를 같이해 조기 대선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크롱의 임기는 오는 2027년 5월 끝난다. 아직 3년 가까이 남아 있지만 야소야대 정국 출현으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만큼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마크롱 밑에서 2017∼2020년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 필리프(53)가 최근 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했는데, 이는 조기 대선 가능성을 의식한 행동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