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은 얼마나 나올까?”
서울 은평구에 사는 A씨는 최근 떨리는 손으로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했다. 그는 더위를 크게 타지 않는 체질이지만, 지난 4월 출산한 아내와 자녀를 위해 올여름에는 매일 에어컨을 틀고 살았다. A씨는 ”전기요금이 많이 올랐다고 들어서 당연히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것이라고 각오는 했다”면서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염이 심한데 늦더위까지 계속되는 상황이라 당분간 더 에어컨을 틀고 지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냉방 수요가 늘고 다양한 가전제품이 등장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전기요금 누진제는 7년째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를 유난히 많이 쓰지 않는 평범한 4인 가족도 누진제 최고 요금 적용 구간에 들어가는 상황이라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전기요금 누진제는 지난 2018년 이후 7년째 요금 구간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적용 중인 7∼8월 주택용 전력 요금 체계는 △300㎾ 이하(1㎾h당 120원) △300㎾h 초과 450㎾h 이하(214.6원) △450㎾h 초과(307.3원)의 3단계로 구분된다.
더 윗단계로 갈수록 전기 사용량 대비 요금이 무거워지는 누진제 구조다.
기본요금도 300㎾h 이하일 땐 910원을 적용한다. 300㎾h를 넘으면 1600원, 450㎾h를 초과하면 7300원으로 확 뛰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전기 사용량이 빠르게 늘면서 300㎾h나 450㎾h를 넘는 일반 가정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여름철의 경우 최고 구간인 월 450㎾h의 전기 사용량도 과소비로 보기 어렵다.
2020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수행한 에너지총조사에 따르면 4인 가구의 7∼8월 월평균 전기 사용량은 427㎾h이다.
최근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4인 가구 평균 전기 사용량은 이미 500㎾h를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 통계로는 올해 8월 가구 평균 전기 사용량은 2020년 8월 대비 약 31% 증가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현재의 누진 구간을 손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누진제가 7년째 제자리에 멈춰 있는 탓에 도입 당시의 제도적 효과가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0년대 초반 석유파동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시점에 도입됐다. 가정용 전기를 절약해 수출 산업용 전기를 확보하려는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국가기간산업 육성이 중요한 시점도 아닌 만큼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아울러 국민소득 증가와 가전제품 다양화 추세에 따라 누진제가 가정용 전기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도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전남대 배정환 교수 연구팀은 한전의 용역을 받아 수행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효과와 동적 요금제 도입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2016년) 누진제 완화와 (2018년) 누진 구간 확대로 냉방용 수요는 어느 정도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며 "추가 누진제 완화에도 큰 수요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입법’ 토론회에서 “1980년대 북한에서 펼친 ‘두 끼 먹기 운동’이 국제적인 망신과 비웃음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며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는 북한의 ‘두 끼 먹기 운동’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